신세계, 호암 추모 ‘고객제일’ 광고 실은 사연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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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신세계그룹이 창업주인 고(故) 호암 이병철 회장 탄생 100주년을 맞아 호암을 추모하는 광고(사진)를 내 눈길을 끌고 있다. 8일 주요 일간지의 양면에 걸쳐 게재된 광고는 왼쪽 면에는 호암이 1984년 신세계백화점 영등포점 개점식 때 딸 이명희(당시 신세계백화점 상무) 회장과 함께 매장을 둘러보던 모습이, 오른쪽 면에는 87년 신세계 창립 25주년을 맞아 쓴 친필 휘호 ‘顧客第一’(고객제일)이 담겨 있다.

이번 광고는 호암의 외손자인 정용진 부회장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광고 속 친필 휘호 ‘顧客第一’은 현재 정 부회장의 사무실에 걸려 있다. 오빠인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위상을 고려해 부친에 대한 공개적인 언급을 잘 안 하던 이명희 회장도 이번 광고에 흔쾌히 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신세계그룹의 경영을 맡으면서 새삼 외할아버지인 호암에 대한 언급을 자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고객들의 불만을 잘 들어드리고 고객들이 우리 점포에 들어와서 나갈 때까지 최고로 대접하는 게 고객제일인 줄 알았는데, 그건 1차적인 생각에 불과하다”며 “우린 고객제일 2.0의 시대에 살고 있는 만큼 고객의 가계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상품을 만들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신세계는 호암의 생각을 임원들에게도 널리 알리기 위해 ‘顧客第一’ 필사본을 10여 점 만들어 각 계열사 대표 등 주요 임원의 사무실에도 걸어 놓았다.

호암도 생전에 신세계를 각별히 아꼈다. 69년 국내 최초로 신세계백화점에서 신용카드를 도입한 것도 호암의 결정이었으며, 영등포점 개점식 때는 반나절 넘게 매장을 둘러봤다. ‘顧客第一’ 친필 휘호 역시 호암이 각별히 아낀 것이다. 신세계 측은 “평소 한학과 서예에 능했던 호암은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에는 낙관(落款·글씨나 그림을 완성한 뒤 찍는 도장)을 찍지 않았다”며 “호암은 이 휘호를 완성한 뒤 낙관을 찍고 한동안 즐겨 감상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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