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 '영국병' 치유한 일관된 개혁, 우리도 배워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요즘 온 나라가 공기업 구조조정 문제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가운데 노조의 동투(冬鬪) 움직임까지 겹쳐 전례없이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는 느낌이다.

이러한 국내 사태는 1970~80년대 중증(重症)의 '영국병' 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영국 정부와 사회가 겪었던 상황과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은 것이 그렇고, 산업 구조조정이 뒤따른 점도 똑같다.

70년대에 영국 경제와 사회를 멍들게 했던 '영국병' 은 역대 노동당 정부의 고용안정을 위한 재정 지출 확대, 공공부문 확대에 따른 노조의 팽창, 노조활동의 극대화에 따른 기업활동 위축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에드워드 히스 총리가 이끌던 보수당 정부(70~74년)는 광산노조와의 파워게임에서 패해 구조조정에 실패했다.

76년 노동당의 캘러헌 총리 정부는 IMF 구제금융을 받아 급박한 금융위기는 모면했지만 노동당의 정치적 기반인 노조와의 마찰은 더욱 심화했고, 경제회생에 필수적인 산업 구조조정, 노동법 개정에는 손도 대지 못해 영국병은 극도로 악화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78년 그 유명한 '불만의 겨울' 에는 무려 3만여건의 노사분규가 발생했고 1백50만명의 공공분야 노동자들까지 총파업을 하는 사태에 이르게 됐다.

필자가 두번째로 영국 근무를 했던 80년대 초는 영국 정부와 대표적 국영노조인 광산노조가 1년간에 걸쳐 팽팽하게 밀고 당기고 있을 때였다.

'영국병' 치유의 기치를 들고 정권을 쟁취한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 정부로서는 석탄산업 구조조정은 난제 중의 난제였다.

경쟁력을 상실한 석탄산업의 대수술은 반드시 필요했으나 히스 정부처럼 파워게임에서 밀려 보수당 정부 자체가 쓰러지고 만 전력이 있었다.

대처 정부가 전면적인 구조조정을 다시 추진하려 하자 대표적 강성노조인 광산노조도 강력한 투쟁을 선언한 뒤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대처 총리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촌보의 양보나 타협없이 일관성 있게 개혁을 그대로 밀어붙였고, 결국 1년 만에 노조를 굴복시켰다.

대처 정부는 광산노조의 사례에서와 같은 강력한 저항을 무릅쓰고 과감하고 일관성 있는 개혁정책을 추진해 노동법 개정으로 산업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요인을 제거했다.

또한 노조의 배상책임제, 파업 여부에 대한 전체 노조원의 비밀투표제 도입 등의 조치를 취했으며 통신.항공.가스.전력.철도 등 46개 국영기업의 민영화까지 단행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공기업 구조조정은 IMF 때부터 줄곧 강력하게 추진하려던 정책이다. 그러나 그동안 정부가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일관성 있게 밀어붙였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집단이기주의에 밀리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뒷걸음치지 않았나 싶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70년대 역대 영국 정권들이 겪었던 시련과 실패, 그리고 영국병을 말끔히 치유한 대처리즘의 성공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이미 언급한 히스 보수당 정부는 노조 파워에 밀려, 그 뒤를 이은 노동당 정부는 집권기반인 노조의 활동 기반을 더 키워주면서 영국 경제는 침몰 직전 상태로 몰리게 됐던 것이다.

여론에 곁눈질하는 일 없이 올바른 방향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줄기차게 추진하면 결국 국민의 신망과 지지가 정부로 돌아오게 된다는 사실은 영국이나 우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최동진 <인제대 석좌교수.전 주영대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