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홀] '도금봉 회고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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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한국 영화사에서 도금봉(70)씨만큼 많은 작품에서 폭 넓은 영역을 오가며 종횡무진 활약한 연기자도 드물다.

활동 당시 현대적인 소재부터 사극은 물론 공포물과 코미디, 그리고 액션 영화까지 '약방의 감초' 처럼 은막을 누빈, 누구의 기억에도 또렷한 원로배우다.

실제 그는 1957년 조긍하 감독의 '황진이' 로 데뷔한 이래 악극이나 연극을 포함해 78년까지 약 2천5백여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여기에 대종상과 아시아 영화제 여우 주연상 등을 수상해 한국 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하다.

특히 요염미의 극치를 보여주는 글래머형 연기와 풋풋한 인상을 전하는 토속적인 연기를 동시에 해내는 묘한 이중성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12월 한국영화 명배우 회고전에 '도금봉편' 을 마련한다.

4일부터 닷새 동안 한국영상자료원 시사실에서 '그대와 영원히'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 도씨가 출연한 다섯 작품이 차례로 선보인다.

배우 도금봉에게 있어 이처럼 영광스러운 날이 있을까마는 정작 행사 당일 그녀가 관객과 인사를 나누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그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이들과도 연락을 끊은 채 몇달째 어디에선가 칩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초까지 운영해 오던 강남의 식당이 몇해 전부터 경영난을 겪으면서 어려움을 겪다가 급기야 빚을 견디지 못해 파산에 이른 것.

영화계의 한 관계자는 "도씨가 환란 등을 겪으며 식당 경영이 어려워지자 무리하게 은행 융자를 받은 게 화근이 된 것으로 알지만 주위에선 보증을 선 게 잘못됐다는 말도 들린다" 고 했다.

그래서 당분간 그의 모습을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설명이다. 항간에는 또 그가 미국에 머물고 있다는 소문도 떠돈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웃음과 눈물을 전해줬던 배우 도금봉씨. 그녀가 왕성한 활동을 보인 시절 별명은 '또순이' 였다. 넘어져도 언제든 다시 억척같이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아 지어준 별명이다.

하지만 일흔에 이른 그가 어떻게 재기할지 막막하다는 것이 주변의 관측이어서 그를 아끼는 팬들은 더욱 안타깝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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