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덕의 13억 경제학] 중국을 ‘무섭다’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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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무섭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주변에 공룡같은 존재가 크고 있으니까요. 이러다가는 한국경제가 중국에 먹히지 않을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직접적인 위기감도 느낍니다. 중국에서는 혐한류(한국을 싫어 함)현상이 일고 있고, 고구려를 자기들 역사에 편입하려는 동북공정도 무섭습니다.

그러나 제가 중국에 대해 무섭다고 느끼는 것은 다른 데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작년 말 서방 IT 업계를 긴장시킨 뉴스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타전됩니다. 중국 통신장비 회사인 화웨이(華爲)가 스웨덴의 4세대 통신망 구축 사업을 따냈다는 소식이었다. 스웨덴이 어떤 나라입니까. 이 분야 세계 최고 기술을 자랑하는 에릭슨을 키운 나라입니다. 화웨이가 수주전에서 마지막까지 접전을 벌인 상대도 에릭슨이었습니다.

중국 회사가 선진국 시장에서, 그것도 세계 최고 기술업체와 겨뤄 이겼다고? 업계가 경악하는 건 당연했습니다. 적진에 뛰어들어 적장을 벤 꼴이니까요. 난리가 났지요. (화웨이 총수 런정페이. 군인 출신CEO다)

속사정을 보면 그리 놀랄 만한 일도 아닙니다. 화웨이라는 회사는 충분히 스웨덴 시장을 먹을 자격이 있는 회사니까요. 이 회사는 10년 전만 하더라도 광둥성 선전의 평범한 통신기기 회사에 불과했습니다. 제가 취재차 방문했던 2002년만 하더라도 횡한 부지에 사무실과 붙은 공장 한 채가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화웨이는 세계 시장 17%를 차지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에릭슨·노키아지멘스네트워크에 이어 세계 제3위입니다.

3위업체가 1위를 이겼는데, 그 게 뭐 놀랄 일인가요... 핵심은 역시 기술입니다. 기술 경쟁력을 갖췄기에 세계 3위 업체로 올라 설 수 있었던 겁니다.

IT뿐만 아닙니다. 지금 중국 각 업계에는 화웨이 같은 업체들이 비 온 뒤 죽순 돚아나듯 생겨나고 있습니다. 전기 자동차업계의 BYD, 지난해 11월 뉴욕 증시에 상장한 바이오(줄기세포) 전문업체인 차이나코드블러드, 태양광 산업의 리더 선텍(無錫尙德) 등이 그런 회사들입니다.

지난해 12월 개통된 우광(武廣·우한~광저우) 고속전철에서도 ‘화웨이’가 발견됩니다. 이 노선의 평균 속도는 시속 350㎞입니다. 독일·일본·프랑스 등 선진국을 추월한 속도지요.

‘불과 10년 사이에 어떻게…’라는 탄식과 찬사가 터지는 건 당연합니다. 기술추격이론으로 큰 연구를 해오신 서울대학교 이근 교수는 이를 ‘비약(Leap frog)’으로 설명합니다. 중국은 선진국 기술을 단순히 추격(Catch-up)하는 게 아닌, 기술 발달 과정을 서너 단계 뛰어 넘어 일약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는 ‘비약’을 이뤘다는 얘기지요. 시장을 미끼로 해외 첨단 기술을 끌어들였고(以市場換技術), 그 기술을 중국산업에 이식시킨 것입니다. 자동차·조선·철강·항공 등 중후장대(重厚長大)형 산업에서도 비약이 이뤄지고 있다고 이근 교수는 말합니다.

이를 가능케 한 더 근본적인 요인은 국가의 리더십입니다. 2002년 등장한 후진타오 체제는 출범과 함께 ‘자주창신(自主創新·독자 기술 개발)’을 국가 시책으로 추진해 왔습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연구개발(R&D)투자는 매년 20% 안팎 증가했더군요. 200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0.9%에 그쳤던 R&D 투자는 지금 1.5%까지 높아졌습니다. 5년 내 선진국 수준인 2.3%까지 끌어올린다는 게 중국 정부의 계획입니다.

그런가 하면 정부는 해외 우수 인재 유치에 직접 뛰어들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게 ‘천인계획(千人計劃)’입니다. 앞으로 5~10년 동안 세계적 수준의 학자 2000명을 영입한다는 게 핵심이지요. 대상자에게 일시 보조금으로 100만 위안(약 1억7000만원)이 주어지고, 연구 경비는 ‘요구하는 만큼’ 지원됩니다. 각계 세계적인 석학 340명이 이 계획에 따라 이미 중국의 대학과 기업 연구개발(R&D)센터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인재가 중국으로 몰려들고 있는 겁니다.

국가가 움직이면 기업도 따라갑니다. 중국은 특히 더 그렇습니다. 부지런히 연구개발 분야에 투자를 했지요. 화웨이의 경우 매출의 10% 이상을 R&D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순익이 아닌 매출의 10%입니다. 국가와 기업의 하나된 기술개발 노력이 ‘스웨덴 쇼크’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구글사태 아시지요?

구글이 중국의 해킹을 참다못해 '정 그러면 우리 중국에서 나갈 거야~'라고 '협박'했던 일 말입니다. 협박이라는 게 상대방이 협박으로 받아들여야지 협박으로 성립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중국은 이를 협박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갈 테면 가'라는 반응이었지요. 결국 구글은 두 손 들고 말았습니다. 중국이 구글의 압력에 꿈쩍도 하지 않은 것은 바로 경쟁 중국회사인 바이두(百度)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화웨이’같은 회사가 인터넷 검색분야에도 있었다는 얘기지요.

중국은 그렇게 전 산업에 걸쳐 기술비약을 이루고 있습니다. 350km로 달리는 우한-광저우 고속전철과 같은 속도로 말입니다. 다만 국내에 있는 우리만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중국에 대해 알량한 자존심이나마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기술 우위’가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중국이 우리에게 '친구하자'고 손을 내밀었던 유일한 이유는 '기술'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더 이상 배울 기술이 없다'고 판단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중국어로 '看不起'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럴 겁니다.

저는 그게 겁나는 겁니다. 화웨이가 스웨덴에서 에릭슨을 이기는 그 기술력으로 무장한 중국이 무서운 겁니다. 대한민국에서도 국가와 기업이 똘똘 뭉쳐 선진 기술을 창출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중국보다 한 발 빠른 기술개발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습니다.

중국에 대한 나의 공포감이 기우로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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