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증한 A형 간염, 백신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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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주부 정미경(43·서울 서초구)씨는 최근 A형 간염 백신을 맞기 위해 인근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백신이 다 떨어졌다”는 대답이었다. 병원 한 곳을 더 들렀지만 마찬가지였다. 정씨는 “A형 간염이 크게 유행한다는데 접종할 백신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걱정했다. 회사원 양모(33·경기도 성남시)씨도 병원 서너 곳에 A형 간염 백신 접종이 가능한지를 문의했지만 “백신이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A형 간염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지만 백신 부족 탓에 예방접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 2월 4일자 20면>

7일 병원과 백신 수입·판매 업체들에 따르면 백신 비축분이 없어 상당수 병·의원에서 백신 접종이 사실상 중단됐다.

A형 간염 백신을 판매하는 녹십자 관계자는 “백신이 전량 수입품인 데다 지난해부터 접종 희망자가 크게 늘면서 백신이 떨어져 이젠 병원에 공급을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령바이오파마의 유병규 부장도 “수입해 놓은 백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병원들에서 요구하는 주문량의 일부만 제한적으로 공급 중”이라고 말했다.

백신 부족이 심화된 것은 지난해부터다. 2008년까지는 A형 간염 백신이 연간 50만 도스(dose, 1회 접종량)가량 공급됐으며 수급에 별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20대와 30대의 A형 간염 항체 보유율이 낮고, 일단 걸리면 치료에 한 달가량 소요되는 심각한 질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요가 급증했다는 것이 병원들의 분석이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수입 A형 간염 백신에 대한 국가검정기간을 현행 46일에서 30일 이내로 줄이기로 했다. 국가검정은 제약업체가 생산한 백신에 대해 정부가 안전성과 품질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제도다. 국가검정센터 김도근 연구관은 “검정기간을 단축하면 백신이 보다 빨리 공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곧 국가검증을 받게 되는 백신 20만 도스가 3월께 공급되면 부족 사태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A형 간염 백신은 소아용이 약 4만원, 성인용이 7만~8만원으로 두 차례 맞아야 하며 전액을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지난해 국내에서 발생한 A형 간염 환자는 1만4999명에 달했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 천두성 박사는 “이 수치는 일부 병원에서 집계된 환자 수로 실제 환자 수는 이보다 서너 배는 많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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