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5개 지역으로 나눠 봤던 아이젠하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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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호 34면

1949년 5월 어느 날, 중국 대륙을 장악한 마오쩌둥은 베이징 시산(西山)에 있는 솽칭(雙淸) 별장에서 김일성이 보낸 특사를 은밀히 만났다. 김일성은 ‘조선반도에서 군사적 충돌을 피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마오는 “조선전쟁이 발발한다면 중국은 출병해 참전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두 사람의 주적은 미국이었다.

이양수 칼럼

마오는 왜 중국 통일을 눈앞에 두고 초강대국 미국을 겨냥해 일전불사를 결의했을까. 당시 미국의 농공업 총생산액은 1507억 달러. 중국은 574억 위안(현재 환율로 약 84억 달러)밖에 되지 않았다.

‘대전략가’라는 마오는 무슨 속셈을 가졌을까. 그 해답은 일본 오키나와의 평화기념관에 있다. 그곳엔 미국이 당시의 동아시아 정세를 어떻게 보았는지 말해주는 지도가 있다. 지도 밑에는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이 54년 1월 7일 연두교서에서 ‘오키나와는 태평양의 초석(Keystone of the Pacific)’이라고 언급한 발언이 붙어 있다. <사진 참조>

주목해야 할 대목은 아이젠하워가 중국을 5개로 나누어 보았다는 사실이다. 지도에는 중국과 함께 대만(Formosa), 만주(Manchuria), 티베트(Tibet), 신장(Sinkiang)이 표시돼 있다. 그 때문에 마오는 중국의 분열을 막으려면 눈앞의 장제스 군대보다 후견자 미국과 맞붙어야 한다는 구상을 품었던 것 같다. 중국은 6·25 때 북한 측 인명 피해(34만 명)의 두 배가 넘는 77만 명의 병력을 잃었다. 하지만 6·25는 마오가 미국과 싸우고 대화할 장(場)을 마련해 주었다. 두 달이면 충분할 것 같던 정전협상을 2년가량 끌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그로부터 60년 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후진타오 국가주석 간에 거친 대치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구글 검열 논란과 미국의 대(對)대만 무기 판매, 중국산 제품에 대한 반덤핑 관세 부과 등은 시작에 불과하다.

오바마는 중국 지도부가 가장 싫어할 두 개의 카드를 빼들었다. 위안화 평가절상과 달라이 라마 접견이다. 특히 위안화 평가절상엔 오바마의 복잡한 셈법이 숨어 있다. ‘정치인’ 오바마는 경제 살리기와 10%를 넘나드는 실업률을 낮추는 게 지상과제다. 그러려면 중소기업과 제조업을 살려야 한다. ‘아시아 시장에서 수출을 1%포인트만 늘려도 미국의 일자리는 수십만 개에서 수백만 개 늘어난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위안화 절상 요구 속에는 중국산 제품을 타깃으로 삼아 서민경제를 살리겠다는 고민이 배어 있다.

그러나 ‘경제발전이 곧 체제안정’이란 굳은 신념을 갖고 있는 후진타오에게 위안화 절상은 마시고 싶지 않은 독주(毒酒)나 마찬가지다.

달라이 라마 접견 문제도 간단치 않다. 조지 부시 대통령(91년)과 빌 클린턴 대통령(98년, 2000년)이 그를 접견했을 때도 중국 지도부는 격렬하게 반발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오바마가 이달 17일께 워싱턴을 방문할 달라이 라마를 만나겠다고 다짐했다. 중국 인권 문제에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인권 침해니, 분열 책동이니 하는 한 차례의 격렬한 다툼을 피할 길이 없다. 50년대에 아이젠하워와 마오쩌둥이 수싸움을 벌인 것처럼 오바마와 후진타오의 대결 역시 국익을 위한 절반의 냉전을 방불케 한다. 두 나라 간의 불신은 뿌리 깊다.

미·중의 충돌은 한국의 외교 역량을 가늠하는 실험대가 될 것이다. 북핵 6자회담 재개와 북·미 회담, 남북 정상회담 등 숨가쁜 일정이 기다리는 한국 정부로선 간과해선 안 될 대목이다.

집권 3년째인 이명박 대통령이 외치 분야에서 국익을 확대하려면 균형 있는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 중국은 MB정부를 ‘친미 정권’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런 만큼 G20 정상회의 개최 못지않게 한반도 정세의 핵심 변수인 대미·대중 관계를 관리하는 데 공을 들여야 할 시기다. 미·중이 주도하는 G2 시대는 한국 외교의 업그레이드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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