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치졸한 '황장엽 끌어들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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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여야 정치권과 국정원.전직 대통령까지 가세한 '황장엽 끌어들이기' 행태가 너무 볼썽사납다. 어제만 해도 국정원은 '본인의 뜻' 이라며 黃씨의 국회 정보위 출석만 고집해 야당을 의도적으로 따돌리는 인상을 주었다.

또 한나라당이 정보위 출석을 굳이 거부할 것은 무언가. 김영삼 전 대통령까지 기자회견를 열고 "黃씨가 내게 김대중 대통령의 '과거' 를 얘기할까봐 두려워 국정원이 면담을 방해하고 있다. 黃씨에게 국정원에 있기 어려우면 우리집에 머물라고 말하려 했다" 고 말했다.

일이 이토록 치졸한 지경으로 번진 데는 국정원의 책임이 가장 크다. 국정원 스스로 밝혀온 대로 신변 안전에 각별히 유의하는 한도 내에서 黃씨 개인의 권리를 충분히 존중했더라면 이런 불상사는 없었을 것이다.

黃씨의 대북정책 비판에 '홀대' 로 앙갚음하는 인상을 준 것부터 잘못이었다. 국가기관으로서의 원칙과 체통을 잃은 처사였다.

국정원은 黃씨를 안가에서 내보내기로 했다가 어제 뒤늦게 "원할 경우 안가에 머물며 특별관리를 받도록 할 것" 이라고 밝혔지만 이미 정부로서의 신용이 떨어진 뒤다. 그러니 야당이나 전직 대통령이 黃씨 본인을 직접 만나 확인해야겠다고 나서는 것 아닌가.

황장엽씨는 정치인이 아니다. 정치에 휘둘려서도 안된다. 그를 이용하는 얕은 정치적 술수도 배제해야 한다.

그를 비중있는 망명인사라는 위상에 걸맞게 보호하고 배려해야 할 국정원이 정치적 고려를 앞세운 결과 지금처럼 너도나도 黃씨를 끌어들이는 상황이 빚어졌다고 본다.

여든 야든 정치권이 黃씨를 필요로 하는 경우는 북한 정세에 대한 판단과 주장을 듣는다든가, 아니면 黃씨의 인권이나 신변상 문제가 발생했을 때일 것이다.

지금은 이런 정도를 넘어 당략과 정쟁에 黃씨를 동원하려는 기색마저 엿보여 걱정이다.

우선 미숙하고 즉흥적인 일처리로 이번 사태를 초래한 국정원이 솔직하게 전말을 털어놓고 사과할 것은 사과해야 한다. 나아가 정치권도 자중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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