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고어 역전 희망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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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는 26일 취임사에 버금가는 '승리 선언문' 을 낭독했다.

그는 "선거의 끝은 새로운 출발" 이라며 국민 화합을 역설했다. 그러나 민주당 앨 고어 후보측의 불복 소송으로 미국 대선은 끝이 잘 안보이는 연장전에 들어갔다.

연장전에는 이미 연방 대법원 심리 절차가 남아 있고 플로리다 주의회마저 개입하려는 움직임도 있어 싸움의 차원이 달라지고 있다.

가장 관건이 되는 것은 고어 진영이 사활을 걸고 있는 불복 소송이다. 고어측은 팜비치 카운티가 '보조개 표(dimpled ballots)' 의 인정을 제한했을 뿐 아니라 마이애미 - 데이드 카운티는 아예 수작업 재검표를 중단했다는 이유를 들어 소송을 걸었다.

이 소송 절차는 주법에 따른 것이다. 당초 주 대법원이 수검표 결과를 인정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검표 결과 보고 마감시한을 26일 오후 5시로 정한 것도 선거인단 선출시한(12월 12일)을 고려할 때 패자에게 불복 소송 시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마이애미 - 데이드 카운티에만 기계가 무효로 처리한 표가 1만여장이나 남아 있다.

고어 진영은 소송에서 이겨 이 무효표를 손으로 검표하면 상당수의 유효 '보조개 표' 를 확보해 역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불복 소송은 시간이 많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플로리다 주법은 판사가 패자의 이의 제기를 철저히 조사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법원이 신문하는 증인이 많다. 고어측은 하급심에서 패하면 주 대법원에 상고할 것이다.

이런 모든 과정이 선거인단 선출 시한인 12월 12일 이전에 끝나 고어의 패배가 확정되면 고어가 승복할 가능성이 크다. 여론의 압력도 있거니와 현실적으로 추가적인 투쟁수단이 적기 때문이다.

반면 고어가 소송에서 이기면 당선자 확정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법원의 결정 내용에 따라 마이애미 - 데이드가 수검표를 재개하거나 팜비치가 수검표를 다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법정 다툼 때문에 12월 12일 시한까지 당선자를 확정하지 못하게 되면 연방 선거법에 따라 주의회가 선거인단 25명을 선출할 가능성도 있다.

주의 상.하원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공화당은 그 경우 부시를 위한 선거인단을 선출할 계획을 짜고 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면 고어측은 주의회의 결정을 뒤엎기 위해 연방 대법원에 소송을 낼 게 분명하다.

주법원에의 불복 소송 제기와 주 의회 개입 사태로 이어지는 과정과는 별도로 또 하나의 중요한 변수가 있다. 12월 1일로 예정된 연방 대법원의 수검표 인정 여부에 대한 심리다.

대법원이 소송을 제기한 부시측 주장을 받아들이고 플로리다주 대법원 결정을 뒤집으면서 수작업 재검표 결과를 인정하지 않으면 고어는 패배를 인정해야 하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다.

대법원이 부시측 요구를 기각하면 이는 플로리다 주 대법원 결정과 동일한 것이므로 고어로서는 '본전치기' 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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