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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와 포드, 일등의 비극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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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호 02면

이러다 도요타가 망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리콜 사태는 일파만파다. 처음에는 위기가 아니라 일과성 폭풍이라 여겼다. 리콜을 결정하고 판매와 생산까지 중단할 때는 그랬다. 신속하고 과감하게 위기에 대응하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진실은 그게 아니라는 게 드러나고 있다. 진작 경고를 받았는데 무시했고 사고 증거를 불법으로 숨겨왔다는 얘기가 나온다. 급기야 도요타의 자존심인 하이브리드자동차마저 대량 리콜하는 일이 벌어졌다. 도요타로선 일대 위기다. 자칫하면 회복이 불가능할지 모른다. 늑장 대응에 진실 은폐가 사실이라면 말이다.

김영욱의 경제세상

나에게도 충격이다. 존경하는 기업으로 꼽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요타는 철학이 있는 기업이다. 세계를 제패한 기업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철학을 갖고 있으면서 그 철학을 경영 일선에서 구현해 세계 일등이 된 기업은 포드와 도요타, 둘뿐 아닐까. 과문인지 모르겠지만 창업자나 기업 이름 뒤에 주의(ism)나 방식(way)이란 단어가 붙어 보통명사가 된 건 이들뿐이다. 경영철학을 가진 기업이란 의미다.

포드자동차의 창업주인 헨리 포드 이름 뒤에 주의(ism)를 붙인 게 포디즘(Fordism)이다. 포드의 경영 사상이란 의미다. 20세기 초 생산 표준화와 컨베이어 시스템을 활용, 자동차를 대량 생산함으로써 포드는 세계 일등이 됐다. 자동차 값도 대폭 낮춰 ‘자동차 대중화시대’를 개막한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대량 생산과 저가 제품 생산은 포드만의 상징은 아니었다. 록펠러나 카네기 등 같은 시대의 대기업가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포드에만 유일하게 주의(ism)가 붙은 건 인간 존중이라는 경영철학 때문이었다. 1914년 실시한 최저임금 5달러제가 단적인 예다. 임금을 무려 250%나 올렸다. 이윤을 종업원에게 되돌리겠다는 차원이었다. 사기를 진작시켜 더 많이 생산토록 한다는 계산도 있었지만 말이다. 다른 기업들도 따라 하는 등 파장도 대단했다.

도요타도 그렇다. 일본의 10년 불황 속에서 경쟁력이 더 강해진 기업이다. 전 세계 기업들이 앞다퉈 도요타 배우기에 나섰을 정도였다. 도요타 방식 따라 하기가 대유행이었다. 필요할 때 필요한 양을 공급하는 저스트 인 타임(JIT) 생산 방식, 경쟁 상대보다 낮은 비용ㆍ높은 품질로 물건을 만드는 능력, 협력업체와의 든든한 파트너십 등이 벤치마킹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는 겉모습이었다. 정작 중요한 건 인간 중심의 경영철학이었다. 종업원들이 끊임없이 반성하고 개선하는 마음가짐을 가졌던 건 그들의 자율을 존중하고 현장경영을 중시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높은 생산성과 고품질의 바탕에는 종신고용과 노사관계의 신뢰가 깔려 있었다. 도요타란 이름 뒤에 방식(way)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이유다.

처음에는 욱일승천했다. 새 조직능력, 새 생산방식, 새 기술에 새 경영철학이 결부됐으니 그야말로 파죽지세였다. 하지만 성공 요인은 언제나 실패의 요인으로 진화한다. 포드는 단일 모델만 생산해 생산성을 극적으로 높였다. 이게 일등의 요인이었다. 하지만 이는 소비자의 취향을 무시하는 요인으로 변했다. 경제 발전으로 지갑이 두툼해진 소비자들이 멋지고 성능 좋은 자동차를 원한다는 걸 몰랐던 것이다. 1930년대 GM에 일등을 빼앗긴 이유다. 도요타 역시 성공 요인은 도요타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는 일본적 전통과 문화 속에서만 제대로 작동 가능한 것이었다. 1000만 대의 생산 규모를 가지기 위해 외국으로 확장하는 순간 장애 요인이 될 수 있었다. JIT와 자동화 같은 겉모습은 이식 가능하지만 철학이나 정신은 그럴 수 없어서다. 그렇다면 반성과 개선을 통한 고품질과 저비용은 달성하기 힘들다. 외국 기업들이 벤치마킹해 갔지만 대부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일등을 향한 욕심과 일등을 차지한 후의 오만이 도요타의 눈을 가렸다. 하긴 이게 세상 이치인지도 모르겠다. 성공과 실패는 동전의 양면이며, 영원한 일등은 없다는 것 말이다. 정상이 되는 순간 내려올 일만 남은 게 일등의 비극적 숙명이라는 것도. 국내의 일등 기업들이 곱씹어야 할 실패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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