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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보직 사퇴 ‘쇼’로는 교육비리 근절 못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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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울시교육청이 교육비리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급기야 11개 지역교육청의 교육장 전원과 본청 국장·산하기관장 등 고위 간부 17명이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며 보직 사퇴서를 내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그간 교육현장에서 듣도 보도 못했던 기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어쩌다 이런 지경이 됐는지 안쓰럽고 답답하기 그지없다.

최근 잇따라 불거진 시교육청의 교육비리를 보면 그야말로 복마전(伏魔殿)이 따로 없다. 장학사 승진을 놓고 돈이 오가는가 하면 학교 공사 수주를 둘러싼 뇌물 수수가 한두 건이 아니다.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줄대기를 한 얼빠진 공무원부터 방과후 학교 운영업체 선정 대가로 뇌물을 챙긴 교장들에 이르기까지 비리 행태도 가지가지다. 최고의 청렴성과 윤리성을 보여야 할 교육계가 이 모양이니 학생들이 뭘 보고 배울지 걱정이 앞선다. 국가 장래가 암담할 지경이다.

교육계의 혼탁 책임을 진답시고 교육 책임자들이 집단 보직 사퇴라는 나름의 고강도 처방전을 내놓았지만 속이 들여다보인다. 자숙과 자성의 진정성보다는 ‘생색내기 쇼’의 냄새가 짙다. 사퇴서를 낸 간부들은 모두 교육전문직이어서 다음 달 정기 인사에서 학교장으로 가면 그만이고, 정작 비리에 책임을 져야 할 교육지원국장이나 기획관리실장 같은 일반직 간부는 사퇴서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교육청은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검찰·감사원 등 사정기관이 교육계 비리 척결에 나서자 면피성(免避性) 사퇴 쇼를 유도했다는 의심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이런 시교육청에 자체 정화를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緣木求魚)일지 모른다. 외부의 수술칼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런 점에서 교육과학기술부가 어제 시·도교육청 자체 감사기구의 책임자를 판사·검사·변호사나 외부의 감사 전문가 등으로 임용하고, ‘학부모 명예감사제’를 도입해 학부모가 직접 감사에 참여하도록 한 것은 적절한 조치라 하겠다. 이는 교육청이 자청한 셈이나 다름없다.

시교육청은 지금이라도 처절하게 반성해야 한다. 비리 근절 의지부터 새롭게 다져 교육계의 혼탁한 물을 깨끗하게 정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