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여야 바뀌어도 3년전이나 지금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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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요즘 우리는 악몽같은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직전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 같다.

기아자동차 사태와 한보사건, 그리고 정치적 불안정이 중첩되면서 동아시아에서 출발한 외환위기에 휩쓸렸던 게 1997년이었다.

지금 대우자동차 사태, 현대건설 위기, 파행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 정치의 모습이 3년 전과 흡사하기에 많은 사람은 다시 파국이 오는 것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위기는 3년 전처럼 고통스러운 구조조정 과정을 외면하거나 늦추려고 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정치권이 이런 국정난맥 극복의 시급함과 변혁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3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당과 야당의 위치만 달라졌을 뿐 국민의 불안은 도외시하고 상당부분 소모적인 정치투쟁에 몰두하고 있는 것은 변함이 없다. 그들의 논리와 행태도 과거와 너무나 흡사하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경제 살리기등 국정운영의 발목을 잡는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자신들이 앞장서 대국적으로 정국을 풀어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의 눈치만 보고 있는 행태도 과거와 같다.

검찰수뇌부 탄핵소추안 처리를 몸으로 막고 이로 인한 국회파행의 책임을 야당에 떠넘기는 지도부의 언행은 민심 불만을 묵살하는 안이한 자세다.

추가 공적자금 처리를 늦춰선 안된다는 여론이 퍼지기를 기다린 다음 그 여론 속에 숨어 파행의 책임을 야당과 나누려는 속셈마저 보인다. 그렇다고 정국대처 능력이 부족한 데서 오는 지도부 무능론과 당정 쇄신론이 덮어지지는 않는다. 민심의 흐름을 대통령에게 실감나게 보고하지 않는다는 비판과 의심의 한복판에 민주당 지도부가 있다.

야당은 야당대로 시급한 국정현안이 산적해 있는 데도 여당의 약점을 최대 한도로 부각하면서 정치공세로 일관하려는 것도 과거와 닮았다고 하겠다.

국정난맥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정국을 정상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급하다. 여기서 양비론(兩非論)을 제시하려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분명히 국정운영의 일차적 책임은 정부.여당에 있다. 때문에 정국의 파행에 대한 책임은 여당이 마땅히 져야 한다.

지금까지 정부.여당은 대통령까지 나서 '상생(相生)의 정치' 를 보여주겠다고 약속했으면서도 정국운영의 행태는 여야 상생과 협력보다는 갈등과 대립을 자초한 측면이 많다.

이런 점은 정부.여당이 마땅히 반성하고, 사과할 것은 사과하면서 대국적으로 정국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소수 여당' 의 정국관리는 어렵다. 그럴수록 정도(正道)를 걸어야 하며, 거대 야당 탓으로 돌려선 안된다. 국정혼선은 정면돌파론에서 해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야당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회의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이 국정운영의 동반자란 점에서 정부.여당과 마찬가지로 책임의 일단을 지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야당도 정경분리의 원칙을 적절하게 구사하면서 정치투쟁과 시급한 국정현안을 나눠 정국을 운영하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시급한 현안은 먼저 40조원에 이르는 추가 공적자금의 국회처리 문제다.

대통령 사과, 검찰수뇌부 자진 사퇴, 국회의장 사퇴라는 3대 요구와 별도로 여야가 함께 경제난을 풀려는 정치적 유연함이 필요하다.

민생을 우선하는 고민스런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개혁 혼선으로 인해 피곤한 국민을 공적자금 처리 지연으로 더욱 지치게 만들어선 안된다. 그것이 '다수 야당' 에 걸맞은 정국관리 자세다.

우리의 정치가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만 우리한테 다가온 제2의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여야 모두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고 민주주의의 후퇴를 초래할 수 있다.

서진영 <고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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