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운동권인가 생활진보로 바꿔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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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조국 교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진보적 지식인 중 한 사람이다. 그런 지식인으로서 진보진영을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스스로 찾아내고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해낸다. 지식인적 관점에서 한국 진보의 오늘과 내일을 진단한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아직도 운동권인가 생활진보로 바꿔야”

- 대한민국 진보진영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위기라는 말이 맞다.”

- 그렇다면 그 뿌리와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1997년 대한민국은 외환위기를 맞았다. 이 전대미문의 사태를 만나면서 진보진영의 밑천이 그대로 드러났다. 진보적 관점에서 어떻게 경제·사회정책을 펼 것인지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 김대중(DJ) 정부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시간에 외환위기를 극복했다”고 지금도 자랑하지 않는가?

“1997년 12월 대통령에 당선된 DJ마저 준비가 안 됐다는 측면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DJ는 취임 후 당장은 IMF가 원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노동시장 유연화 또는 구조조정정책으로 상징된다. 앞서 말한 자랑은 이 같은 뼈아픈 대가를 치르고서였다. ‘국민의정부’가 정치적으로는 진보지만 경제적으로는 보수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 노무현 정부 때 진보진영의 대응에 달라진 점이 있었나?

“DJ 정부 때의 모순된 정권의 성격은 ‘참여정부’ 때도 그대로 계승된다. 특히 부동산정책 실패에 따른 혹독한 대가를 지금도 치르고 있다.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자신들의 경제적 처지가 향상되기를 기대했지만 반대로 더 악화한 것이다. 정치적 지지세력은 떨어져 나가고, 경제적 반대세력은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이에 따라 정치적으로는 진보 대 보수의 전선이 분명해졌다.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진보 대 보수의 전선이 오히려 모호해졌다.”

- MB 정부가 탄생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보는가?

“한나라당은 ‘경제는 우리가 살리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섰다. 사회·경제적 약자가 MB쪽으로 지지 방향을 튼 결정적 이유다. 반 MB를 넘어 전망이나 계획이 뭔지 진보진영은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대중이 실감할 만큼은 아니었다.”

- 우리 사회가 보수화했다는 지적도 있다. 어떻게 보는가?

“사회·경제적 약자가 MB정권을 지지한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보수화했다는 것은 일정 부분 맞다. 국회나 행정부의 진보 대 보수의 세력분포를 보더라도 그 점은 뒷받침된다.”

- 우리 사회의 보수화 현상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는가?

“진보진영은 MB정부 경제정책의 허구성이 곧 드러날 것으로 본다. 현재 MB정권은 ‘중도실용’이라는 이름으로 경제정책의 방향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결코 정책이 사회·경제적 약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한계가 뻔하다는 주장이다.”

- MB정부의 감세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MB정부의 경제정책을 진보진영은 ‘줄푸세(세금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를 세우는)’라고 부른다. 하나같이 부자, 강자들을 위한 정책이다. 그 결과 양극화를 더욱 심화하고 재정부담을 높일 것으로 예상한다.”

- 올해 6·2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진보진영의 준비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진보진영의 현 모습은 한마디로 분열이다. 정당만 5개에 이른다. 민주당·민주노동당·창조한국당·진보신당·국민참여당이 그것이다. 한나라당은 10년 동안 정권을 놓친 와중에도 이름은 바뀌었지만 ‘단일대오’를 유지했다. 정당정치적 의미에서 그것은 발전이었다. 반면 DJ와 노무현은 똑같이 집권 후 새로운 정당을 만들었다. 나름대로 이유와 명분은 있었지만 현상으로 보면 스스로 단일대오의 쪼개기였다.”

-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어떻게 예상하는가?

“이런 분열 상태에서 진보진영의 앞길은 명백하다. 각개약진 식으로 나가다 보면 다 진다. 산술적으로 봐도 5 대 1의 게임이다.”

-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진보진영이 지방선거 전략전술을 바꿀 수 있는 것 아닌가?

“진보진영의 1개 당으로의 통합은 현 시점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연대조차 쉽지 않다. 지방선거 막판에 연대는 가능해 보인다. 당별로 강하다고 여겨지는 곳의 윤곽이 확실해지면 경쟁 당이 후보를 내지 않는 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크게 보면 민노당과 진보신당,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손잡기를 시도할 수 있다.”

- 지방선거가 끝난 후에는 어떤 변화가 예상되는가?

“6·2 지방선거 이전에는 지지세 확산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도 적어도 6월 지방선거 이전까지는 따로 갈 수밖에 없다. 지방선거에서 각 당의 지지세가 객관적으로 드러나면 각 당의 진로와 관련한 셈법, 카드가 나올 것이다. 그것이 확보된 후 연대든, 통합이든 가능해 보인다.”

- 노무현·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잇단 서거가 진보진영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가?

“두 사람이 남긴 화두는 두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한 가지는 어떻게 다시 권력을 잡을 것인가이고, 다른 하나는 권력을 다시 잡으면 어떤 정책을 내놓을 것인가이다. 전자는 비판자들에게 던지는 화두다. 후자는 경제정책의 실패에 대한 반성이다. 다시 집권하면 어떤 사회·경제정책을 내놓을 것인가 질문을 던진 셈이다.”

- 진보진영의 주요한 축을 담당하는 시민사회단체의 요즘 모습은 어떻게 비치는가?

“과거보다 정치적·도덕적 권위가 떨어졌다. 김영삼 정부 이후 노무현 정부 때까지 시민사회단체 인력을 빼앗아 소진해버렸다. 과거 시민사회단체들이 했던 준정당적 역할은 정당으로 넘어갔다. 때문에 시민사회단체가 보통 시민들을 묶어 조직을 강화하는 작업을 게을리 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의 힘은 바로 보통시민들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망각했던 것이다.”

- 진보진영의 미래와 관련해 우리나라 노동조합의 실태는 어떤 상황인가?

“노조 강화는 진보진영 발전에 필수다. 우리나라 진보진영의 세력이 약한 이유는 서구와 비교해 노조 조직률이 낮은 데서 찾을 수 있다. 대기업·공기업 노조 행태 중 보수적인 면이 적지않다. 노조 가입자도 반노조 혹은 반노동자적 정당이나 후보를 찍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지역주의에 기초한 투표가 그런 예다.”

- 현재 시점에서 진보적 지식인이 해야 할 역할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진보의 가치를 지키는 일이다. 보수시대에 진보의 가치가 의미 없는 것으로 규정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우선 지켜낸 뒤 이를 구체화해 대중에게 전달해야 하는 또 다른 책임도 있다. 요즘 진보에 관한 고민을 담은 책이 쏟아지는 것은 긍정적 현상이다.”

- 진보진영의 문제점 중 무엇을 가장 지적하고 싶은가?

“여전히 이념의 과잉상태라는 점이다. 다들 똑똑하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이념으로 세상을 보려고 한다. 그 때문에 자주 충돌이 발생하고 대중과 소통도 안 된다. 과거 운동권의 모습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다. 대중의 생활 속에서 진보의 가치를 펴야 한다.”

- 진보진영이 반성할 점이 있다면?

“성장만능주의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지 못했다. 서구의 복지국가 모델은 잘살고 난 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여전히 성장 후 복지를 말하고 있다.”

글 윤석진 월간중앙 편집위원 [grayoon@joongang.co.kr]
사진 박상문 월간중앙 사진팀장 [moon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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