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노트] 독서시장에서 퇴조하는 순수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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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많이 팔린 책을 잣대로 독서 시장의 변화 징후를 읽을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올 봄에 선보인 작가 이문열씨의 장편소설 '아가(雅歌)-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민음사)를 보자. 그 책은 작가 본인이 출간과 함께 내민 출사표와 상관없이 독서시장에서는 막상 재미를 못 봤다.

"작가생활의 전기를 마련하고 싶고, '아가' 는 내가 가장 공들여 만든 작품이다" 는 호언과 달리 판매부수는 10만부 내외에 그쳤다.

이 한권이 유일한 판단의 잣대일 순 없지만, 올해 출판 시장 전체를 읽게 해주는 상징으로는 읽힌다.

이문열의 경우 보통 판매 평균치가 20만부 내외인 것과 대조적이고, 그것이 집권 20년을 넘는 문단 내 간판 작가의 경우라서 더욱 극적인 변화로 받아들여진다.

어쨌든 세밑으로 다가서는 올해 출판계의 가장 큰 변화 중의 하나가 '순(純)문학의 위축' 이다.

출판계에서는 그것을 한시적 퇴조라기보다는 2000년 첫해 뚜껑이 열린 독서시장의 상징으로 해석하는 분위기이다. 박완서씨의 외로운 선전을 제외한다면 올해 문학대중들은 통속소설의 손을 번쩍 들어줬다. 정통소설류에 한참 못미치는 '가시고기' 와 '국화꽃 향기' 의 선전(善戰)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단순한 취향 변화라기 보다는 '문화 엘리트들 시장 지배력의 퇴조' 라는 구조적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어느 출판인의 말이 새삼 가슴에 와닿는다.

그러던 차에 또 하나의 구체적인 변화가 관심거리다. 지난주 초 국내 서점 1번가 교보문고에서 무시할 수 없는 '공간 변화' 가 있었다. 예전에 종로쪽 출입구 목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문학 코너가 슬그머니 이전한 것이다. 교보측은 지난 13일부터 내부 공간 배치를 바꾸는 공사를 하면서, 문학 코너를 광화문 지하도 쪽으로 옮겼다.

시.소설.비소설을 포함해 1백30평 규모(임대 평수 기준)의 공간으로 바꾼 것이다.

교보측은 전에 비해 5평 정도가 줄어든 것에 불과하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이것을 두고 출판계 사람들은 '왕창 줄었다' 고 보고 있고 독서시장의 변화를 실감하는 분위기다.

때로는 물리적 수치보다는 체감(體感)이 더 중요할 수 있는데, 이번이 바로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더 중요한 것은 출판계 인사를 포함한 문인들이 갖는 썰렁한 마음이다. 즉 생산자인 그들이 변화하는 시대 앞에 막상 열패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조우석 출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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