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포구 섬진강 재첩 잡는 모습 장관

하동포구 사람들은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푸른 안개가 자욱한 섬진강에 함지박을 띄우고 바닥을 긁어댄다. 강바닥에서 사는 가장 작은 조개 속에 들어 있는 깊은 맛을 캐는 것이다.

지리산 심심산곡의 물이 모여 남해로 흘러드는 섬진강 하류에서 3천여명의 아낙네들이 석양에 물든 강물을 헤집으며 재첩을 잡는 모습은 장관이다.

여인들은 남해바다가 썰물이 돼 강물이 얕아지면 가장자리부터 바닥을 긁기 시작, 점차 강 가운데까지 진출한다. 모래와 함께 퍼올린 재첩은 조리로 쌀을 일듯 골라낸다.

손톱 크기만한 가장 작은 민물조개인 재첩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강하구 모래 속에 산다.

예부터 생활에 지친 사람들의 강장 식품으로 널리 알려진 재첩국이 요즘은 술에 찌든 생활인들의 속풀이 국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재첩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그물로 강바닥을 훑으며 재첩을 캐는 채취선 15척까지 등장했다. 채취선은 섬진강 철교 하류쪽 깊은 곳에서 작업하고 아낙들은 얕은 상류쪽에서 재첩을 잡는다.

물이 빠질 때 하루 네댓시간씩 잡는다. 채취지역은 하동군 고전면 신월리~하동읍 흥룡리간 4백㏊. 섬진강변 마을별로 조직된 여섯곳의 어촌계가 채취권을 쥐고 있다. 하동산은 모두 하동수협에서 경매로 팔린다.

"10년 전만 해도 섬진강 모래밭에 재첩이 널려 있었지예. 저녁 반찬거리가 없으면 강가에 나가 금세 재첩 한바가지를 잡았어예. "

30 년동안 재첩을 캐어온 강계임(52.여.하동읍 광평리)씨는 "요즘은 재첩 한 부대(30㎏)를 잡으려면 종일 강바닥을 긁어야 하지라오" 라며 아쉬워했다.

하동읍에서 태어나 섬진강변에서 자란 그녀는 섬진강 재첩을 캐 2남1녀를 고등학교에 보내고 아들(32)을 장가까지 보냈다.

두 딸의 결혼 밑천을 장만하는 데도 재첩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어머니에 이어 2대에 걸쳐 재첩을 채취하는 그녀는 "섬진강에 재첩이 없었다면 어떻게 입에 풀칠을 했을까 아득하고, 재첩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고 말했다.

섬진강변으로 시집 온 22세 때부터 재첩을 잡기 시작한 趙경례(54.여.하동읍 신기리)씨는 "홍수가 나 재첩이 떠내려 갈 때가 가장 가슴 아팠다" 고 했다.

그녀는 봄부터 늦가을까지 섬진강에 나가 재첩을 캐 자식(2남1녀)을 모두 대학까지 공부시켰다. 그녀는 요즘도 연간 1천만원 이상을 벌고 있다.

하지만 섬진강 재첩도 마구잡이 채취로 갈수록 귀해지고 있다. 지난 10월 말까지 하동수협에서 경매된 재첩은 6백4t(1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7백85t(19억원)에 비해 23% 줄었다.

섬진강 재첩이 귀해지자 값이 오르고 어린 재첩을 잡는 사람마저 생겨났다. 재첩이 제맛을 내려면 1.5㎝ 이상 돼야 한다. 이만큼 자라는데 2년 이상 걸린다.

어린 재첩을 잡지 못하도록 하동군이 재첩잡이 갈퀴의 틈새를 1.5㎝ 이상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마음이 성급한 사람들은 조밀한 갈퀴로 재첩 씨를 말리고 있다.

올들어 어린 재첩을 잡다가 여섯명이 벌금을 물었다.

섬진강 재첩이 줄어들자 하동읍에 밀집한 재첩식당 1백여곳 중 상당수는 중국산 재첩을 국산과 섞어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식당 주인은 "이곳 식당들이 모두 하동 재첩만 사용한다고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며 "재첩 엑기스 등 가공물은 중국산을 많이 섞어 쓴다" 고 털어놓았다.

1991년부터 재첩 양식이 시작돼 이제는 겨울철에도 재첩 요리를 맛볼 수 있게 됐다. 섬진강 하류에 여섯곳의 양식장이 있다.

95년부터는 재첩국 캔.파우치도 생산돼 일본.미국.홍콩 등에 연간 1백만달러 이상 수출하고 있다.

지리산의 맑은 물과 비옥한 모래가 빚어내는 섬진강 재첩. 하동 섬진강변 어촌 마을 주민들은 요즘 올해 재첩 채취를 끝낼 채비를 하고 있다.

4월 말부터 채취되는 자연산 재첩은 초겨울이 되면 모래 속 30㎝ 이하로 내려가 겨울을 나기 때문이다.

겨우내 새 봄에 깊은 맛을 토해내기 위한 영양 갈무리를 하는 것이다. 섬진강변 사람들은 재첩을 그리며 겨울을 보낸다.

하동〓글 : 김상진 기자

사진 : 송봉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