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섀클턴의 위기탈출 7계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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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915년 영국의 어니스트 섀클턴경이 이끈 남극횡단 탐험대는 웨들해의 얼음바다 위에서 부빙(浮氷)에 갇힌 채 10여개월을 표류하고 있었다. 결국 그들이 타고 있던 배는 죄어오는 얼음의 압력을 견디다 못해 난파하고 말았다.

섀클턴과 27명의 대원들은 배에서 탈출해 부빙 위에 텐트를 치고 다시 5개월여를 버텨냈다. 그들은 79일 동안 해가 없는 남극의 겨울 혹한을 견뎌내야 했고 식량이 바닥나 물개기름으로 연명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들은 난파한 배의 잔해로 다시 세척의 보트를 만들고 자신들의 텐트를 찢어 돛을 달았다. 그리고 또 다시 남극바다에 배를 띄웠다. 추위.배고픔.향수 그리고 무엇보다 '절망' 과의 처절한 싸움의 연속이었다.

결국 그들은 7백55일 만에 모두 살아서 돌아왔다. 기적이었다. 그러나 이유있는 기적이었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살 수 있었나□ 그 답이 여기에 있다.

첫째, 주인으로 느끼게 하라. 부빙에 갇히자 대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두려움이 번져갔다. 불평.불만자도 생겨났다. 섀클턴은 두려움.동요, 불평.불만의 바이러스를 차단해야 했다. 그는 말로 설득하거나 달래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대원들이 스스로 탐험대의 주인임을 느끼게 했다. 주인은 결코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가볍게 하라. 그들이 타고 갔던 배가 난파된 후 섀클턴과 대원들은 비상식량이 저장돼 있는 폴렛섬까지 5백57㎞를 행군할 계획을 세웠다. 행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각자의 짐을 최소화해야 했다. 섀클턴은 "줄여야 산다" 고 말했다. 가볍게 할수록 생존 가능성은 커진다.

셋째, 무리한 계획은 즉시 그만두라. 폴렛섬까지의 행군은 무리임이 곧 드러났다. 부빙 사이의 협곡을 도저히 건널 수 없었다. 섀클턴은 즉시 행군계획을 중단했다. 오기를 부리지 않았다. 그는 포기해야 할 것을 빨리 포기할 줄 알았다.

결국 그는 자신의 자존심보다 27명의 생명을 택했다.

넷째, 위기상황에서도 준비하라. 섀클턴은 위기 속에서도 기회를 엿보았다. 세척의 보트를 만들었다. 언젠가 있을 항해를 대비했다. 바닥에 내팽겨졌을 때, 그래도 눈을 들어 하늘을 보는 사람은 산다.

다섯째, 최종 목표를 늘 기억하라. 섀클턴은 세척의 보트를 남극바다 위에 띄웠다. 그리고 사투 끝에 폭 30m 길이 15m의 무인도에 닿았다. 그들은 정확히 4백97일만에 땅 위에 선 것이었다.

비록 아무리 작고 보잘 것 없는 땅이라도 그것은 부빙처럼 흔들리지 않았고 갈라지지도 않았으며 물이 스며들지도 않았다. '안주(安住)' 를 유혹할 만했다.

그러나 거기는 최종 목표가 아니었다. 살아남는 자들은 최종 목표를 혼동하지 않는다. 여섯째, 과감히 도전하라. 그들은 사우스조지아섬에 가야 했다. 그래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보트 세척 중 두척은 심하게 파손되었다.

한척만 띄울 수 있었다. 그나마 해류와 바람에만 의존해 항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삶의 기회는 과감히 도전하는 자에게 미소짓는 법이다.

일곱째, 끝까지 책임져라. 섀클턴은 22명의 대원들을 엘리펀트섬에 남겨놓고 5명의 대원들만 데리고 보트를 띄웠다. 그들은 끝까지 희망의 돛대를 붙들었다. 기적이 일어났다.

사우스조지아섬의 서쪽 해안에 닿은 것이다. 그리고 다시 섬의 산 정상을 넘어 섬 동쪽에 있는 포경선 기지에 닿았다.

마침내 살았다. 그러나 섀클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시 엘리펀트섬으로 되돌아갔다. 어쩌면 못 돌아올 수도 있는 그 악몽같은 바닷길을 다시 거슬러 간 것이다.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서다.

마침내 그는 22명의 잔류대원 모두를 살려냈다. 사람은 책임지는 만큼 존재하는 것이다. 세상이 온통 '위기' 라는 말로 도배되어 버렸다. 살아야겠다는 몸부림이 곳곳에서 처절하다. 살고 싶은가? 당연하지. 그렇다면 섀클턴의 남극탐험대에서 배워라!

정진홍. 한국예술종합학교 커뮤니케이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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