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심한 문화예술위 ‘한 지붕 두 위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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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대표적 공공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사상 초유의 ‘한 지붕 두 위원장’ 사태를 겪고 있다. 행정법원으로부터 해임처분 효력정지 결정을 받아낸 김정헌 전 위원장이 그제 서울 대학로 예술위 청사에 보란 듯이 ‘출근’한 것이다. 낯뜨거운 일이다. 문화예술위의 캐치프레이즈가 ‘나누는 문화, 아름다운 세상’인데, 이제 위원장 자리도 둘로 나누기로 했는가. 다른 곳도 아닌 문화예술계에서 이런 해프닝이 벌어진 것은 국제적인 망신거리다.

길게 따질 것도 없이, 원인을 제공한 문화체육관광부의 잘못이 가장 크다. 전 정권의 ‘코드 인사’를 바로잡는다며 무리를 범하다 호되게 질책당한 꼴 아닌가. 법원은 지난해 12월 해임무효확인 소송에서도 “해임처분을 취소하라”고 김 전 위원장의 손을 들어주었다. 김씨의 과오가 해임할 정도는 아니므로 장관이 재량권을 남용했다고 본 것이다. 문화부가 항소·항고를 했다지만 앞으로도 상당 기간 파행은 불가피해졌다.

김정헌씨가 노무현 정권 막바지인 2007년 9월 문화예술위원장에 임명된 것이 대못 박기 식 ‘코드 인사’라는 세간의 비판은 수긍할 점이 있다. 김씨가 몸담았던 ‘문화연대’는 과거 총선 때 낙선운동을 폈고 이라크 파병과 한·미 FTA에도 반대했다. 김씨 자신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며 단식도 했고,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추진위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가 문화예술위원으로 재직할 때 진보 성향의 ‘민족예술인총연합’ 산하 단체들에 대한 지원금은 대폭 늘었다. 문화예술위원장 자리를 화가로서의 전문성과 경륜만으로 따냈다고 자신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새 정권의 문화정책 방향과 맞지 않는다고 탈법·불법을 무릅쓰며 물갈이를 시도하는 일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비록 1심이지만 문화부는 분명히 법원의 경고를 받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런 ‘코드-역(逆)코드’ 소동이 되풀이된다면 우리 문화계의 미래가 암담해진다. 안 그래도 문화예술위는 기금을 매년 수백억원씩 까먹는 등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앞만 보고 달려도 부족할 판에 좌·우 코드에 흔들리고 있으니 한심하고 딱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