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향의 고향' 관람 문화는 '낙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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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지난 11일 오후 한국화 대가인 아산(雅山) 조방원(趙邦元)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 광주시립미술관 1층.

첫 전시실에 들어서자 두서너명씩의 관람객 다섯 팀이 보이는데, 두팀은 반대 방향으로 돌면서 감상하고 있었다. 전시실 입구 바닥에 왼쪽으로 돌라는 화살표가 분명히 그려져 있었는데도 말이다.

3살쯤 된 아이가 소리를 지르고 발을 쿵쿵거리면서 전시실 안을 뛰어다니지만 30대 초반의 여성 관람색은 "야, 이리 와" 라고 부를 뿐 적극 제지하지 않는다.

40대 후반의 남녀는 예닐곱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도 들릴 만큼 큰소리로 이야기를 하면서 작품들을 둘러보고 있다.

마지막 전시실에선 휴대전화를 꺼내 번호를 누르더니 소곤거리는 여성도 눈에 띈다.

한 미술관 직원은 "기획.상설 전시실 구분할 것 없이 많은 관람객들이 자기들 편한 대로 행동하고 있다" 며 "심지어 전시실 안에서 몰래 기념 촬영을 하거나 작품들을 찍는 사람도 있다" 고 말했다.

광주가 예향(藝鄕)이라지만 관람문화는 여전히 낙제점을 면치 못하고 있다.

박금자발레단의 발레 '심청전' 이 열린 지난 10일 저녁 광주 문화예술회관 대극장. 공연 자체가 예정된 시간보다 10분 늦게 시작되더니 계속 가관(?)이었다.

입장은 공연 시작 10분 전까지 해야 하지만 상당수는 불이 꺼지고 막이 오른 뒤에야 우르르 들어왔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 계속 사람들이 들락날락거렸다.

중간에 나가 매점에서 과자를 사다 먹는 아버지.아들과 장면이 바뀔 때마다 네댓살쯤의 아이들에게 해설해주는 어머니, 지겨워서 칭얼거리는 아이의 소리 등등. 중간 휴식 시간을 빼고 1시간15분 동안 카메라 플래쉬도 30번 이상 번쩍거렸다.

2층 관람석에선 일부 남학생들이 막이 오르고 내릴 때 상스럽게 휘파람을 불어대기도 했다.

30대 중반의 한 관람객은 폐막 후 퇴장하면서 "분위기가 산만해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다" 며 "예향이라는 말 자체가 부끄럽다 "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화예술회관 기획운영과 주윤수씨는 "우리 지역의 관람문화 수준이 서울은 물론 부산에 비해서도 현저하게 낮다" 며 "통제보다는 계도 위주로 나가고 있으나 사람들이 따르지 않아 애로가 많다" 고 말했다.

그는 "공연 개시 후 입장이나 7세 이하 어린이 입장, 음식물 반입 금지 같은 기본조차 오히려 항의하거나 갖가지 핑계를 대 우기는 관람객들이 적지 않다" 고 덧붙였다.

이해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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