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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학대…어떤 휴유증 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기억상실증에 걸렸던 대호(5.가명). 집주소나 전화번호, 심지어 자기 이름도 몰랐다. 어른들만 보면 벌벌 떨었고, 밤에도 잠을 자지 못한 채 웅크리고 있었다. 키나 몸무게도 정상아동보다 훨씬 모자랐고 대소변도 못가렸다.

그런 대호가 말문을 연 것은 정상적인 가정에 위탁된지 꼭 반년만이다. "아빠 하늘나라…, 큰 아빠 무서워…. " 아버지를 여의고 친척집을 전전하면서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고, 큰 아빠에겐 전화기로 얼굴을 얻어맞기도 했고, 소변을 못 가려 시냇물에 빠뜨려진 날도 있다는 것이 대호가 살려낸 기억들이다. 학대는 아동의 일생에 치유키 어려운 후유증을 남긴다.

서울대 소아정신과 홍강의 교수는 "신체적 학대를 받은 아이들은 세 명 중 한 명 꼴로 크고 작은 뇌손상으로 정신지체 등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린다" 며 "겉으론 멀쩡해도 학습 거부.도벽.우울.불안감 등의 정신적 후유증을 앓는 이가 많다" 고 말했다.

학대는 또 세습되고, 재생산된다. 아버지에게 망치로 얻어 맞았던 경수(9.가명)는 동생의 손을 똑같이 망치로 때린다.

"아버지는 이유없이 날 때리지만 난 세번은 참는다" 는 게 경수의 변명. 8개월된 아들 승규를 안고 다니며 동정심을 유발하는 앵벌이 鄭모(31)씨. 자신도 청소년기를 앵벌이로 보냈으면서도 아들을 '아기 앵벌이' 로 만들고 있다.

서울시립아동상담소 이정희 소장은 "학대 가정의 부모들이나 비행청소년들과 상담해보면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구타.욕설.방임을 당했던 기억을 지닌 경우가 많다" 며 "아동학대는 평생 안고 다녀야만 하는 후유증을 낳는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보고 대처해야 한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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