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페르시아 기행] 4. 페르세폴리스 쐐기문자 비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인류 최고의 발명품으로 꼽히는 문자는 BC 3300년부터 등장했다.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금의 이라크 남부에서 후대에 수메르인이라고 알려진 '키엔기' 인들이 인류 최초로 문자를 쓰기 시작했다. 글씨의 형태가 나무못처럼 생겼다고 해서 쐐기문자라고 불린다.

쐐기문자는 토판.돌.나무.금속 등에 3천여년간 쓰였다. 그러나 이 문자의 체계가 밝혀진 것은 불과 2백년 전의 일이다. 그전까지는 인류의 고대사는 그리스 역사가들이나 성경의 자료 등 2차 자료를 통해 재구성됐다.

필자가 찾아본 것은 17세기 이래 유럽인들이 베껴가 판독 독본으로 삼은, 쐐기문자로 된 크세르크세스왕의 비문이었다.

이란의 남서쪽 도시 시라즈에서 북동쪽으로 43㎞ 정도 달리면 끝없이 펼쳐지는 마르비 다쉬트라는 평원의 끝에 거대한 쿠히-라흐마트('은혜의 산')를 만난다.

다리우스왕은 그 웅장한 품 안에 페르시아의 수도 페르세폴리스를 건설했다. 근처 채석장 나크쉬 루스탐에서 돌을 가져다 높이 20m, 길이 4백50m, 넓이 3백m의 테라스를 깔았다.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보다 3배 정도 큰 규모다. 이 테라스 위에 다리우스 대왕, 크세르세스, 아르타크세르세스의 궁궐과 접견실.보물창고.후궁 등을 건축했다.

미화 1달러 정도의 입장료를 내고 테라스에 들어서면 1백11개의 계단을 올라가야한다. 한 계단의 높이는 10㎝정도.

23개 나라 왕들이 조공을 바칠 때 승마한 자세로 오르기 편하도록 낮게 만들었던 것 같다. 계단을 올라서면 두 마리의 '라마수' (사람.말.사람의 복합체로 악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키는 동물)가 '만국 성문' 을 지키고 있다.

만국 성문에서 오른쪽으로 향하면 다리오 대왕의 외국 사신 접견실('아파다나')이 있다. 높이 19m의 기둥이 76개가 있었으나 지금은 13개 밖에 남아 있지 않다. 이 접견실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다리우스궁이 나온다.

다리우스궁은 2.4m의 테라스 위에 길이 29m, 넓이 40m이다. 이 궁으로 향하는 계단에 음식물을 나르는 부조물이 있는 것으로 보아 '궁'이라기 보다는 연회장으로 이용되었던 것 같다.

또한 외벽의 부조물이 수건과 화장품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장소가 다리우스왕과 크세르크세스가 외국 왕들과 사신들은 접견하기 전 화장을 하던 곳 같다.

이 궁의 문설주에는 짤막한 다리우스의 비문이 4개가 있다. 필자가 찾던 비문은 서쪽 기둥에 쓰여져 있었다. 11m정도의 기둥에 육안으로는 확인 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랗게 쓰여져 있었다.

이 비문의 내용은 이 궁이 다리우스 대왕이 건축을 시작하였지만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가 완성했다는 내용이 맨 위에서부터 고대 페르시아어, 두 번째는 엘람어, 세 번째는 아카드어로 같은 내용이 세가지 다른 쐐기문자로 쓰여져 있었다.

페르세폴리스의 쐐기문자 판독은 19세기 서구 유럽에 일어나기 시작했던 '오리엔탈 르네상스' 를 주도했으며, 이를 통해 서양 정신사의 두기둥인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바탕이 오리엔트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배철현 <미 하버드대 문헌학 박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