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청와대 청소원이 활개치는 세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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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청와대 청소담당 위생직원이 정현준씨로부터 거액을 건네받았다는 보도는 우리 권부(權府)의 위세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자괴감(自愧感)을 금치 못한다.

청와대가 어떻게 비쳤으면 일개 청소담당자가 이같이 활개를 칠 수 있었는지 청와대의 뼈아픈 자기반성이 요구된다.

기능직 8급인 청와대 청소담당 李모씨는 자신을 청와대 위생과장이라고 사칭하며 鄭씨에게 접근, 지난해부터 민원 해결 명목으로 1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서 조사받고 있다.

그는 鄭씨의 사설펀드에 돈을 맡긴 뒤 손해를 보자 투자 손실 보전조로 2억8천만원을 챙긴 혐의도 받고 있다.

청소담당자에게 속아 거액을 건넨 鄭씨의 어리석은 행동에 실소를 금치 못하면서도, 청와대 직원이면 통할 수 있다고 믿는 현 세태에 경악하게 된다.

검찰은 李씨로부터 혐의 사실을 진술받고도 그를 비밀리에 소환했다고 한다. 툭하면 소환하고 연행하는 검찰의 일반 행태와는 극히 대조적이다. 검찰부터 청와대라면 이처럼 알아서 기는 모습이니 일반 백성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청와대로선 말단 직원 한명이 저지른 일이라며 가볍게 넘기려 할지 모른다. 그러나 결코 李씨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불과 20여일 전에도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행정관 한명이 포항제철에 납품 압력을 행사하고 1억2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청와대 전체의 기강해이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 친인척 또는 청와대 고위직을 사칭하는 이른바 '청와대 사칭 사기사건' 도 이 정부 들어 모두 14건이나 된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스스로의 처신을 돌아보고 주변까지를 살피는 특단의 기강 쇄신대책을 마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번 사건은 자유당 시절 신문 만화 '고바우' 에 등장했던 경무대 분뇨처리 담당자를 연상시킨다. 노벨 평화상까지 받은 나라의 대통령 비서실이 40여년 전 독재정권 때와 유사하게 투영된대서야 대통령을 제대로 보필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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