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에서] 국감인가 외유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7면

11일 국회의원 8명이 참석한 주중 한국대사관 국정감사는 하나마나한 감사였다. 의원들이 질의 자료를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장영달.신기남.신계륜 의원은 메모지에 적힌 간략한 질문으로 끝냈다. "외교관이 더 필요하다고 보는데 대사 생각은 어떠냐"(신기남 의원), "중국을 포함해 주변국들이 한반도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고 판단하는데 대사 생각은 어떠냐"(장영달 의원)고 묻는 식이었다. 대사의 생각이 궁금해 베이징(北京)까지 온 것일까.

다른 의원들이 준비해 온 질문도 속 빈 강정 같았다. 중국 내 동포의 한국 입국사증 발급이 어렵다는 현실과 관련해서는 "선양(瀋陽) 총영사관을 방문했는데 비자 브로커들과 영사들의 비리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였다"(정문헌 한나라당 의원)는 것에만 관심을 보였다.

비자 발급이 까다로운 게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며 이 사안이 중국 내 동포에 대한 출입국 제한을 풀어야 하느냐 마느냐의 정책적 차원에서 논의해야 할 문제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가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보충 질의도 다르지 않았다. 열린우리당 한명숙 의원은 "고구려 유적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중국이 먼저 하면 안 된다. 북한의 고구려 유적이 이에 앞서 등재될 수 있도록 남북 간 공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감사장의 많은 사람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과 중국 내 고구려 유적은 이미 같은 기간에 등재하기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탈북자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 등 현안이 많은 대사관에 대한 국정감사치고는 너무 태평했다. "서로 잘해 봅시다"로 끝난 인사말. 정중하고 우호적이지만 전혀 감사다운 감사가 펼쳐지지 않은 3시간 남짓이었다. 외유(外遊)성 국감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유광종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