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유력’ 선수 아플 때 대표 선발전 해야 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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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금메달 3개, 여자는 0개.”

안현수(왼쪽)와 진선유가 2006년 토리노 겨울 올림픽에서 각각 3관왕을 달성한 후 입국 기자회견에 나선 모습. 그러나 안현수와 진선유는 부상 중이던 지난해 4월 선발전이 열리는 바람에 탈락해 이번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다. [중앙포토]

AP통신이 1일(한국시간) 예상한 한국 쇼트트랙의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 금메달 개수다. AP는 “한국은 쇼트트랙 남자 1000m·1500m·5000m 계주와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총 금메달 5개를 따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한체육회가 예상한 것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렇다면 그동안 ‘금메달 효자 노릇’을 해온 여자 쇼트트랙은 어찌된 일인가. 그동안 한국이 겨울올림픽에서 따낸 17개의 금메달 중 9개를 따낸 종목이 여자 쇼트트랙이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에서는 계주 종목 등에서 은메달 한두 개를 바라보고 있을 정도로 초라하다.

◆진선유 부재, 여자팀에 큰 타격=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 때만 해도 상황은 정반대였다. 여자팀의 ‘에이스’ 진선유(22)가 든든히 받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진선유는 1000m와 1500m, 3000m에서 우승하며 대회 3관왕에 올랐다. 이번 올림픽에서 4관왕을 노리는 중국팀의 왕멍도 진선유에 밀려 금·은·동메달을 하나씩 따는 데 그쳤다.

하지만 이번 대표팀에 진선유는 없다. 지난해 4월 대표선발전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진선유는 2008년 2월 미국에서 열린 쇼트트랙 월드컵 6차대회에서 레이스 도중 넘어지면서 인대를 다쳤다. 그해 11월에는 복귀전을 준비하던 중 다른 선수와 부딪쳐 넘어지면서 골반에 타박상을 입었다. 회복이 채 덜 된 시점에서 열린 올림픽 대표선발전에서 진선유는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 부상을 당한 ‘쇼트트랙 황제’ 안현수도 비슷한 이유로 대표선발전에서 탈락했다. 이를 두고 대한체육회 일각에서는 “빙상연맹의 대표선발에 문제가 많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한 고위간부는 “빙상연맹이 이번 올림픽 쇼트트랙에서 실패한다면 심각한 후유증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몸 상태가 거의 회복된 두 선수는 2일 태릉에서 열리는 겨울체전에 출전한다.

◆10개월 전에 선발전을 치르다니=

많은 빙상인들은 “2010년 2월 올림픽에 나설 선수들을 10개월 전인 지난해 4월에 뽑은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올림픽 직전에 최상의 기량을 가진 선수를 선발해 내보내는 게 상식인데 대한빙상연맹 처사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실제 미국과 중국 대표팀은 올림픽 대표 선발전을 지난해 말 치렀다.

그러나 대한빙상연맹은 지난해 4월 한 차례 선발전으로 끝냈다. “빨리 선수를 확정해 합숙훈련을 하는 게 계주 종목에 유리하고, 10월에 선발전을 치르다가 괜한 부상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상당수 빙상 관계자들은 “아직도 남아 있는 빙상계의 세력 다툼이 그 본질”이라고 말한다. “한체대-비한체대 간 파벌 싸움은 봉합됐지만, 빙상계의 핵심 인사들이 자신의 눈 밖에 나면 어떻게든 선수를 대표팀에서 제외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두 선수가 그 피해자라는 뜻이다.

한 빙상인은 “안현수가 성남시청에 가는 과정에서 연맹 관계자들과 마찰이 있었다. 이 때문에 안현수를 못마땅하게 여긴 실세들이 안현수의 선발 기회 자체를 박탈했다”고 주장했다. 진선유도 안현수와의 형평성 때문에 희생됐다는 분위기가 주류다.

이러다 보니 미국·러시아 등 일부 국가에서 안현수 측에 “귀화할 경우 올림픽 출전을 보장하겠다”는 제안까지 해오고 있다.

온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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