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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소득 격차의 절반, 성인 되기 전에 이미 결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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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취임 후 첫 국정연설에서 “나는 중단하지 않는다(I don’t quit)”며 국정개혁의 의지를 다졌다. 그러면서 “21세기에 최고의 빈곤 퇴치 프로그램은 세계적 수준의 교육”이라고 강조했다.오바마는 지난해 1월 취임 이후 교육 문제를 유독 강조해왔다. 한국의 교육을 부러워하는 발언도 몇 차례 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하는 의욕적인 교육개혁 가운데는 빈곤층 자녀를 위한 ‘0∼5세 계획(Zero-to-Five Plan)’이 있다.

이 정책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학자는 제임스 헤크먼(James J Heckman·66·사진) 시카고대학 경제학과 교수다. 2000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그는 면밀한 데이터 수집과 통계분석으로 학문 융합의 새 지평을 열고 있다. 최근에는 한 개인이 어렸을 때 보이는 성향과 특성과 교육 성과가 인생 전반에 걸쳐 어떤 경제적·사회적 영향을 가져오는지 추적하고 정부의 정책 방향을 제시해왔다. 자선이 아닌 투자의 시각으로 빈곤층 자녀 교육 문제를 보는 것이다.

그는 인지 능력 가운데 유독 IQ를 중시하는 주장에 대해 “인간의 능력은 본질적으로 다중적이고 다차원적”이라며 “사회·정서적 능력, 예컨대 성격, 건강, 인내심, 시간 개념, 위험에 대한 태도, 자기존중, 자제력 등 많은 비(非)인지적 요소들이 사회적 성공의 가능성을 예측하는 강력한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헤크먼 박사와의 e-메일 인터뷰 요지.

-박사님은 다양한 연구를 통해 조기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나는 일련의 연구에서 저소득층의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삶에 사회가 개입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해왔다. 사회적 불평등의 원천과 해결 방안을 연구해왔다. 여기서 핵심은 가족이다. 왜냐하면 한 인간이 어떤 종류의 가정에서 태어나느냐가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들에 따르면 한 사람의 평생소득을 기준으로 사회적 불평등도를 따져볼 때 그중 절반 정도는 성인이 되기 전 결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 50년 전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아이들이 가난하고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난다.

유럽도 여기저기서 이민자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유사한 경향이 확인된다. 오늘날 많은 나라가 고민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이슈들, 예를 들면 범죄, 10대 임신, 건강 문제들은 빈곤층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인적 자본 형성과 관련돼 있다. 불우한 가정과 그렇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능력의 격차는 아주 일찍, 영유아기에 벌어지기 시작한다. 가정환경 차이는 인지 능력 발달과 사회·정서적 능력의 발달에 심대한 차이를 초래하고, 어른이 된 이후 범죄·건강 문제와 관련된다. 그들의 삶에 사회가 일찍 개입할수록 교육효과도 크고 범죄도 줄어들고 노동생산성도 높아질 수 있다.”

-조기교육이 왜 다른 시기의 교육보다 더 중요한가.
“인간 능력의 발달 과정에서 영유아기는 당연히 더 중요하다. 나는 논문을 통해 인간의 인지능력 발달에는 영유아기가 민감기(sensitive period)이며, 비(非)인지 능력의 발달에는 청소년기가 민감기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한 인간이 어릴 때 겪었던 불리한 환경을 나중에 보충하려 하면 비효율적이다. 인간 발달 과정의 문제는 미리 예방하는 게 나중에 보충 또는 보완하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효율적이다. 빈곤층 아동에 대한 조기 지원은 다른 사회 정책수단보다 투자수익률이 훨씬 높다.

예컨대 공공 직업교육, 교도소 재소자 교화, 문맹 퇴치 교육, 대학생 등록금 지원, 치안예산 확대 등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효과를 낳는다. 나아가 한 인간의 생애에 걸친 능력(skill) 및 동기(motivation)의 형성은 본질상 역동적일 수밖에 없다. 앞서 형성된 능력이 더 발전된 능력의 바탕이 되는 것이고, 앞서 형성된 동기가 더 숙성된 동기의 밑바탕이 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미 형성된 동기는 더 나은 능력의 형성을 북돋우고, 이미 형성된 능력은 더 나은 동기의 형성을 북돋운다. 어떤 아이가 애초에 뭔가를 배우고 해보려는 동기가 형성돼 있지 않았다고 생각해 보라. 그 아이가 어른이 돼 도대체 뭘 배워 어떤 인물이 될 것 같은가? 동기와 능력은 함께 커가는 것이다. 따라서 불우한 배경을 가진 인간의 삶에 사회가 일찍 개입할 필요가 있다.”

-박사님은 영유아 교육을 강조한 ‘0∼5세 계획’ 공약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공약은 현재 어디까지 실행되고 있나.
“정책담당자들이 실행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때문에 장기적인 사회정책들이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의회에서 올해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안다.”

-한국에서도 소득 격차가 교육 격차를 낳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심화시킨다는 지적이 있다.
“단순히 부모 세대의 소득이 문제는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태어나서 겪는 가정환경의 질이다. 빈곤층과 부유층 자녀가 경험하는 가정환경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부모가 자녀의 인지능력을 배양하기 위한 자극, 애정 표현, 가정 내 처벌 양태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있다. 어떤 메커니즘이 작용하는지 더 연구할 필요가 있지만 편부모 가정에서는 부모가 둘 다 있는 가정에 비해 자녀에게 훨씬 낮은 수준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고 이런 차이는 유아기와 청소년기까지 지속된다. 요컨대 두뇌 발달을 위한 자극이나 지원을 훨씬 적게 받는 것이다. 이런 차이는 세대 내, 그리고 세대에 걸친 사회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원천으로 작용한다.

공공정책에 의해 빈곤층 아이들이 감수해야 하는 불리함을 해결할 수 있다면,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하면서 경제적 생산성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경제학자들에게 효율과 평등의 균형을 이루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때로는 효율을 높이려는 정책수단이 불평등을 확대시키기도 한다. 자본소득에 대한 감세 정책을 그런 사례로 꼽을 수 있다. 하지만 해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나이 든 사람들의 삶에 사회가 개입할 경우 이런 부작용을 감수해야 하지만 아예 일찌감치 개입하면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 저소득층 아동들의 삶에 사회가 일찍 개입하게 되면 효율과 평등의 상충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는 빈곤 아동에 대한 사회적 개입 프로그램이 갖는 매우 독특한 특징이다.”

-한국에서 교육은 빈곤 탈피와 신분 상승을 꿈꾸는 수단이었다. 최근 한국에서 과외·학원 등 사교육이 번성하고 있는데 그 대책을 조언해 준다면.
“한국의 사교육은 사회적 불평등을 지속시키거나 오히려 확대하는 기제로 작용한다고 본다. 한국에선 국내총생산(GDP)의 3% 정도를 사교육에 투입한다고 들었다. 두말할 필요 없이 너무 많다. 이런 자원을 저소득층 아동에게 재배분하는 정책을 쓸 수 있다면 한국 경제에도 크게 도움을 줄 것이다. 또 사회적 불평등을 경감하면서 경제적 효율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는 급격히 고령화되고 있다. 평생교육과 재교육이 중요한 이슈로 등장했다. 박사님은 어떤 시각을 갖고 있나.
“인간의 뇌세포 형성은 생애 전 기간에 걸쳐 이뤄진다고 알려져 있다. 두뇌 활동을 자극해 능력을 개발하고 확대하는 것은 나이에 관계없이 바람직한 일이다. 따라서 사회적 교육투자를 논의할 때 노년층을 배제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에게 주어진 한정된 예산을 감안할 때 이것을 어느 연령대의 구성원에게 투입하면 가장 효율적일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급속한 기술발전으로 전 세계에서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되고 있다. 이런 추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노동생산성이 올라가고 컴퓨터 사용이 늘어나고 산업영역이 확장되면 산출(output)도 늘어난다. 고용 없는 성장을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 노동시장을 좀 더 유연하게 만들고 노조의 독점적인 권력을 축소하는 게 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줄 것이다.”

-박사님은 2001년 한국을 방문한 것으로 안다. 다시 방문할 계획은.
“한국은 아주 활기차고 번성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나라였다. 하지만 당장 방문할 계획은 없다.”

이양수 기자 yas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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