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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랜드마크를 찾아서] 7. 호주 시드니 파워하우스 박물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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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조선왕조 명품전' (내년 1월 28일까지)이 열리고 있는 호주 시드니 한복판의 파워하우스 박물관(이하 파워하우스)에서 70대 할머니 주디스 코키스를 만났다.

"환상적이고 경이롭다. 흙을 이렇게 완벽하게 빚어낼 수 있는가. "

뉴사우스웨일스(NSW.수도 시드니) 주립대학에서 화학공학을 가르치는 데이비드 트림 교수의 느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단순하면서도 장엄하다. 유약의 색채가 아름답고 모양 또한 흠 잡을 데 없다. "

지난 시드니 올림픽의 공식 문화행사로 개최된 '조선왕조 명품전' 은 호주에서 열린 최초의 대규모 한국전시. 도자기를 중심으로 서화.가구.필기구 등 조선시대의 문화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파워하우스의 수석 큐레이터인 클레어 로버츠는 "지금까지 호주에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한국미술의 독창성을 알리게 돼 즐겁다" 고 말했다.

1988년에 개장한 파워하우스는 호주에서 가장 큰 박물관이다.소장 물품이 38만여점에 이른다. 전시면적은 2만㎡(약 6천여평). 국제 규격의 축구장 세 개가 들어설 크기다.

평소 소장품의 3%를 진열하고 있지만 방대한 품목.공간 탓에 하루 일정의 짧은 시간으론 박물관을 제대로 구경할 수 없다.

그러나 파워하우스의 진짜 매력은 크기가 아니다. 크기를 압도하는 전시품의 다양성이다. '세상에서 모을 수 있는 것은 다 모은다' 는 생각에서 후세에 남길 가치가 있는 물건들을 수집.전시하고 있다.

파워하우스의 모토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동양과 서양의 만남. 19세기 호주 아낙네들의 고달픈 일상을 재현한 코너부터 21세기 우주과학의 미래를 집약한 코너까지 역사의 구석구석을 되짚고 있다.

클레어 로버츠는 "과학에서 사회사까지, 장식미술에서 항공기까지 인류의 창조성과 관련된 모든 것을 탐구합니다" 고 설명한다.

'조선왕조 명품전' 은 이런 파워하우스의 특징을 드러내는 전시로 풀이된다. 이곳 5층에 97년 개관한 아시아 갤러리에선 중국.한국 등 동양문화를 호주에 알리는 기획전이 수시로 열리고 있다.

파워하우스의 가장 큰 장점은 박물관을 시드니 시민들의 생생한 교육현장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모두가 어울리는 문화장터 역할을 하고 있다.

호주 최초의 증기기관차, 옛날 기차역 시간표, 낡은 농기구, 호주 원주민 예술품, 구형 자동차.헬리콥터, 인공위성 등, 그야말로 '난장판' 이다.

실습형 전시도 주목된다.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몸으로 겪으며 문명의 발전을 체험토록 했다. 컴퓨터 게임에 몰입한 아이, 영화제작 과정을 실험하는 10대, 3차원 홀로그램에 넋을 잃은 50대, 옛날 맥주 제조공정을 지긋하게 바라보는 노인 등 각양각색이다.

어린이.과학.의상.항공.미술.의학 등 각종 전문박물관을 한데 집결시킨 모양새다. 총 25개의 갤러리에서 각종 영구.기획 전시가 끊이지 않는다.

연평균 관람객은 1백여만명. 강연.세미나 등 일반인 대상 프로그램도 풍성하게 마련해 시민과 함께 호흡하는 박물관을 지향하고 있다.

파워하우스 박물관이 제시하는 교훈은 크게 두 가지. 첫째, 박물관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이라는 점. 실제로 이곳에선 지금도 세계 각국의 물품들을 꾸준히 모으고 있다.

둘째, 문화는 미술.음악 등 고급예술의 테두리를 뛰어넘어 항상 일상과 함께 발전한다는 것. 삶의 소소한 것을 빠뜨리지 않고 남기려는 기록정신이 치열하다.

파워하우스 박물관의 역사는 1백년 전으로 올라간다. 1879년 호주 최초로 열렸던 국제 박람회에 출품된 물건을 보존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현재의 건물은 파워하우스란 이름이 일러주듯 한때 화력발전소로 쓰였던 곳. 폐쇄된 발전소를 개조해 지난 88년 이곳으로 이전해왔다.

시드니=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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