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원의 캘리포니아 골프 <96>3000만원짜리 골프채가 잘 나가는 이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51호 16면

명품[名品]<명사>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 또는 그런 작품.
국어사전을 뒤져봤다. ‘명품’이란 단어의 뜻이 뭔지 알고 싶었다. 주변에 ‘명품’이 좀 많은가. ‘명품’ 가방, ‘명품’ 시계, ‘명품’ TV만으로는 모자란다. ‘명품’ 전문 쇼핑몰이 있는가 하면, ‘명품’ 썩소란 단어까지 등장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명품’이란 매우 값이 비싼 외제 브랜드 상품을 일컫는 말로 뜻이 바뀐 모양이다. 프라다구찌샤넬 등 외제 브랜드의 고급 가방이나 롤렉스, 오메가 등 고가의 시계나 액세서리 등을 가리켜 주로 명품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만약 고가의 외제 브랜드 제품을 명품이라고 말한다면 골프클럽에도 ‘명품’은 있다. 아이언과 드라이버를 합친 풀세트 가격이 2000만원을 훌쩍 넘는 그런 제품들 말이다. 드라이버 한 자루 가격이 800만원, 4번부터 9번까지의 아이언에 웨지 등을 섞은 아이언 세트는 1500만원을 넘는단다. 드라이버 한 개 가격이 웬만한 경승용차 가격과 맞먹는 셈이다. 직접 살펴봤더니 일반 클럽과 큰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두드러진 특징이라면 끝마무리가 깔끔한 편이고, 클럽 헤드가 마치 금칠을 한 듯 번쩍번쩍 빛나는 게 전부다.

그런데 궁금하다. 이런 명품 드라이버를 사용하면 하루아침에 비거리가 300야드로 늘어날까. 1500만원짜리 아이언을 사용하면 샷을 할 때마다 볼이 핀 근처에 쩍쩍 붙을까(만약 아이언 세트가 3~9번 아이언에 샌드웨지,피칭웨지,어프로치 웨지 등 10개의 클럽으로 구성됐다면 클럽 한 개의 단가가 150만원이란 뜻이다).'미국 캘리포니아 골프스쿨(PGCC)에서 연수하던 시절, 미국인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데이비드, 이런 드라이버 봤느냐. 한국엔 드라이버 한 자루에 2000달러를 넘는 것도 있단다.”
“뭐라고, 드라이버 한 자루 가격이 2000달러를 넘는다고? 혹시 드라이버 헤드에 다이아몬드라도 박혔나?”(실제로는 드라이버 한 자루에 7000달러가량 되는 셈인데 이렇게 말했다간 거짓말쟁이로 오인받을까봐 두려웠다.)

최근 골프용품 업체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명품 클럽 이야기가 나왔다. 희한한 것은 별다른 광고를 하지 않았는데도 한 세트에 3000만원이나 하는 클럽 풀세트가 날개돋친 듯 팔리고 있다는 거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조용히 찾아와서 그 자리에서 2~3세트씩 사간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최근엔 전 국무총리가 한 기업체 사장으로부터 1000만원대의 골프클럽 세트를 선물받았다는 보도도 나왔다.

드라이버 한 자루에 800만원이나 한다는 것도 그렇고, 광고 마케팅을 하지 않는데도 ‘명품’ 클럽이 잘 팔린다는 사실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드라이버를 8만원에 팔든, 800만원에 팔든 그건 전적으로 판매자의 몫이다. 원가 10만원을 들여 만든 드라이버에 800만원짜리 가격을 붙여놨는데도 잘 팔린다면 오히려 판매업체의 마케팅 전략을 칭찬할 만하다. 그렇지만 필자는 골프 담당 기자로서 직무유기를 한 건 아닌지 반성한다. 800만원짜리 드라이버가 다른 클럽들과 어떻게 다른지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는 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