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준 펀드' 수사 흐지부지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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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검찰의 동방.대신금고 불법대출 사건 수사가 난관에 부닥쳤다.

핵심 관련자들이 해외로 도피하거나 자살한 데다 로비 의혹의 핵으로 떠오른 사설펀드 수사가 원점을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수사는 로비 의혹보다는 한국디지탈라인의 주식 내부거래와 정현준 사장의 시세조종 부분 등에 머무르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 주변에서는 "검찰 수사가 벌써 정리 단계 아니냐" 는 관측도 나돌고 있다.

◇ 핵심 관계자 없어진 검찰 수사〓사실상 동방금고 이경자 부회장의 소유로 알려진 신양팩토링 오기준 사장이 검찰 수사가 시작된 지난달 26일 해외로 출국한 사실을 검찰은 지난 3일에야 알았다고 한다.

미국 시민권자로 알려진 吳씨를 검찰이 조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금감원이 이번 사건을 검찰에 고발하자마자 미국으로 달아난 동방금고 유조웅 사장의 행적도 현재로선 묘연하다.

이 두 사람은 이번 사건 관련자들이 하나같이 검찰에서 李씨의 심부름꾼으로 지목했던 인물들이다.

게다가 검찰이 금감원 관계자들의 비리를 캐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예상됐던 장내찬 전 국장마저 자살해버려 이제 검찰이 조사할 핵심 관련자는 한명도 없는 셈이다.

검찰은 李씨와 정현준 사장의 입에만 의존해 수사해야 할 형편이지만 李씨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다고 한다. 로비 의혹은 의혹으로만 남을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 지지부진한 정.관계 로비 수사〓검찰이 로비 의혹과 관련해 현재까지 발표한 것은 정현준씨가 만든 펀드의 개수와 가입자 규모, 액수가 고작이다.

정.관계 인사의 펀드 가입 여부 등에 대해서는 밝혀낸 것이 없다. "李.鄭씨 등 조사한 관련자 누구도 정.관계 인사의 실명을 대지 못하는 등 설(說)만 있을 뿐 근거가 없고 가.차명이 많아 실제 가입자를 밝히기가 실무상 어렵다" 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금감원 관계자를 상대로 한 로비 의혹에 대해서도 검찰은 "대부분 떡값 수준의 혐의만 드러나 처벌에 어려움이 있다" 고 말하고 있다.

검찰이 추가로 밝혀낸 사실도 장내찬 전 국장이 '평창(알타)펀드' 에 다른 사람 이름으로 1억원을 투자했다는 것이어서 '모든 잘못은 죽은 사람이 뒤집어 쓰게 된다' 는 말이 맞아 떨어지는 형국이다.

이에 따라 검찰 수사는 정.관계 로비 부분은 별로 규명하지 못하고 李.鄭씨가 주도한 불법대출과 주가조작 등 혐의만 밝히는 선에서 마무리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 경우 검찰은 또 한번 비판여론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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