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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는 재미, 구워내는 재미, 기다리는 재미”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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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호 10면

“여성적 감성이야말로 21세기를 이끌어 갈 화두라고 하잖아요. 여성의 몸은 창조의 풍요로움으로 가득 차 있죠. ‘다산(多産)’과 ‘비옥함’을 뜻하는 ‘퍼틸리티(fertility)’적 감성을 여성의 몸에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내달 포슬린 페인팅 전시회 여는 아티스트 승지민

포슬린(porcelain) 아티스트 승지민(44·지민아트 대표)씨가 다음달 열리는 전시회에 도자기 토르소(torso)를 들고 나온 이유다. 매끈한 여성의 몸매 표면에 그려진 뱀은 황금빛 알들을 감싸고 있다. 털이 북실한 거미는 신과 베짜기 솜씨를 겨루다 벌을 받아 쉴 새 없이 실을 짜내는 거미가 된 아라크네를 연상시킨다. 포슬린 아트란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예술. 유약을 바르고 구워낸 도자기에 안료로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800도 정도로 구워내면 안료가 유약 밑으로 스며들어 영구히 지워지지 않는 상태가 된다. 원나라 때 개발된 이 ‘상회(上繪)’라는 기법은 그 뒤 유럽으로 퍼졌다. 마이센(독일), 로얄 코펜하겐(덴마크), 로얄 우스터(영국) 등 유럽을 대표하는 자기들도 이 기법으로 만들어져 왔다.

승 대표는 대기업에 다니던 남편과 1998년 폴란드로 갔다가 포슬린 아트에 눈을 떴다. 영국인 학교에 다니던 아이 친구 엄마로부터 이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 뒤 머지않아 주위로부터 “마이센에 들어가도 되겠다”는 찬사를 들을 정도로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출신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주립대에서 여성학 석사를 받은 직후였다.

“폴란드에서는 여성학 박사과정을 공부할 수 없어 심란하던 차에 운명처럼 포슬린 페인팅을 만난 거죠. 고교와 대학 시절 잠깐이나마 그림을 그렸던 감각을 뒤늦게 꽃피웠다고나 할까요. 이탈리아 호비세람, 독일 마이센 도자기 페인팅 스쿨 등을 다니며 새로운 기법 연구도 했죠.”

귀국한 이후 2002년부터 작업실을 차려놓고 본격적인 포슬린 페인팅 전파에 나섰다. 서울 논현동 작업실에 이어 전주, 대전, 대구, 부산에도 분원을 만들었다. 국제포슬린작가협회 컨벤션(2004년)에서 은상을, 세계 도자기페인팅 박람회(2005년)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으로도 이름을 알렸다. 그는 포슬린 아트의 묘미로 “무엇보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자신만의 보물을 만드는 기쁨”을 꼽으면서 “그리는 재미와 구워내는 재미, 여기에 기다리는 재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리는 데 며칠, 구워내는 데도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하지만 그 기다림은 지루함이 아닌 설렘이죠. 저는 성질이 급한 편이었는데 포슬린 아트를 하면서 느긋해졌다는 소리를 듣게 됐어요.”

그는 2003년부터 문하생들과 함께하는 전시회 수익금을 소외 이웃에 기부해 왔다. 2003년에는 이라크 어린이들에게, 2004년에는 노인성 질환을 앓는 저소득층 노인들을 위해 보냈다. 2005년부터는 미혼모 보호시설인 춘천 ‘마리아집’에 정기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2003년에도 막연하게 미혼모들을 돕고 싶었어요. 하지만 회원분들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아이들 아니냐’며 반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한번 조용히 찾아가 봤는데 수녀님들이 ‘어린 엄마’들을 엄마처럼 돌보는 모습에 마음을 굳혔습니다. 어쩔 수 없이 아기를 낳아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인 아이들이 스스로 삶을 꾸려갈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포슬린 아트가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데 활용되면 더할 나위가 없겠죠.”


◇전시= 2월 17~23일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승 대표의 작품 40여 점과 동호인 작품 등 150여 점이 전시된다. 18일부터 22일까지 오전 11시와 오후 2시에는 시연회도 열린다. 문의 02-73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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