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대충 그려진 아셈 태극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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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정동 사진부 기자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상징이다. 음양과 우주의 생성 소멸을 상징하는 태극 문양은 동양 여러 나라에 전해져 왔지만 국기에 이런 섭리를 표현한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그래서 펄럭이는 만국기 중에서도 태극기는 그 독특한 모습이 금방 눈에 띈다. 프랑스 국기에서 파랑을 녹색으로 바꾸면 이탈리아 국기가 되고, 90도 회전하면 네덜란드 국기와 비슷해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태극기의 독특함은 금방 드러난다.

그러나 태극기에도 단점이 있다. 정확하게 그리기가 까다롭다는 점이다. 그리는 방법 몇 가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태극의 지름은 깃면 세로 폭의 절반이다. 태극의 빨강과 파랑을 나누는 곡선은 깃면의 대각선에서 시작하고 끝난다. 괘의 구성부분인 효의 폭과 효 사이의 거리는 2 대 1이다…'.

최근 대통령의 해외 순방이 이어지고 있다. 9월에는 카자흐스탄과 러시아를, 10월 들어서는 인도와 베트남을 방문했다. 그런데 순방국에 걸려 있는 태극기에서 많은 문제점이 발견된다. 크렘린 궁에 걸린 태극기는 괘가 잘못돼 있었고,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가 열린 하노이 시에 걸린 태극기는 국기 제작법을 들먹일 필요가 없을 정도로 형편없었다.

손님을 초청했으면 그 나라 국기를 정확하게 제작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우리 태극기가'대충'제작되고 있다. 하노이에서 만난 한 외교관은 '우리가 직접 제작해 전해주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언 발에 오줌 누기가 될 수 있다. 태극기를 정확하게 제작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상대 국가에 책임을 묻기 전에 우리 정부가 먼저 제작법을 세계 각국에 알려주는 게 어떨까? 하노이 시에 유치원생이 그린 것 같은 태극기가 펄럭이는 걸 보고 하는 생각이다.

최정동 사진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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