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up] ‘품질 신화’ 흠집 난 도요타의 아키오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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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자동차 업계 1위인 도요타의 아성이 흔들리고 있다. 가속페달 불량으로 미국과 유럽에서 역대 최대 규모인 500만 대가 넘는 차를 리콜하고, 여기에 원인을 해결할 때까지 미국에서 캠리·코롤라 등 8개 차종 생산을 당분간 중단하기로 했다. ‘품질의 도요타’라는 이미지에 금이 가고 있는 것이다. 2008, 2009년 영업 적자(2009년은 예상)에 이은 이번 사태로 도요타의 위기감은 커지고 있다.

지난해 6월 경영권을 잡은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54·사진) 사장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도요다 가문의 4대인 그는 대규모 적자 전환에 따른 회사의 위기 상황에서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창업주 일가가 경영권을 잡은 것은 14년 만이었다. 그러나 2년 연속 적자를 내고, 여기에 안전 결함에 따른 대규모 리콜마저 잇따르자 회사 안팎에서 실망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아키오는 취임 이후 반 년이 지났지만, 전 세계 36만 명 도요타 직원들의 구심점이 될 것이라는 당초의 기대와 달리 명확한 부활의 비전을 내놓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취임 이후 “이번 금융위기는 100년 자동차 산업에 처음 경험해보는 위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발언은 위기의 본질을 회사 내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외부 환경 탓으로 돌리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일본의 한 자동차 담당 기자는 “아키오 사장은 전 직원이 공유하는 명확한 비전을 내놓기보다는 간부들의 비행기 좌석을 비즈니스에서 이코노미로 강등하는 등 상식적인 비용 절감책만 내놓았다”고 지적했다. 과거 도요다 일가가 보여줬던 강력한 지도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최근 회사 내에서는 1960년대에 성행했던 ‘3K 악덕’이 다시 살아났다는 말도 나온다. 당시 3K는 ‘게리(경리) 담당, 고바이(구매) 담당, 고베상대’ 출신이 주요 요직을 장악한 것을 비꼬는 말이었다. 지난해 퇴직한 도요타의 한 간부는 “과거 3K 가운데 고베상대 대신 아키오 사장의 모교인 게이오대가 새로운 K로 등장했다”며 “이들 출신이 주요 보직을 차지하면서 도요타의 위기가 아키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내부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회사 최고 경영진의 ‘섭정체제’가 이런 난맥상과 관련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도요타의 현재 의사결정 구조는 아키오 사장과 조 후지오 회장, 와타나베 가쓰아키 부회장이 같이 참여하는 3인 운영체제다. 인사나 판매 등 일반 사항은 아키오 사장이 결정하지만 대규모 투자나 이번 리콜과 같은 중대 결정은 3인 합의를 거쳐 도요다 쇼이치로(84) 명예회장이 최종 결정한다.

이번 리콜을 부른 안전 결함도 도요타의 위기를 제대로 점검하지 못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리콜의 직접적 원인은 가속페달을 밟은 뒤에 페달이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내려간 상태에서 그대로 머물거나 너무 늦게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브레이크를 밟아도 감속에 문제가 생겨 특히 코너를 돌 때 위험할 수 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은 가속페달과 연결 부위에 쓰인 소재의 강도가 떨어져 마모가 예상보다 빨리 진행됐기 때문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를 근거로 2000년 이후 매년 납품가격을 깎는 도요타 구매시스템에서 문제를 찾기도 한다. 무리한 원가 절감 추진이 불량 소재 사용으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것이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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