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현대 조웅천 "내 싱커 칠 선수 나와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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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프로야구 선수, 특히 투수가 나이 서른이 되면 만감이 교차한다.

'이제 마운드에서 내려갈 때가 됐는데' 라는 생각이 들다가 '조금만 더' 라며 주먹을 불끈 쥐기도 한다. 그러나 서른에 야구에 눈을 떠 날개를 활짝 편 '늦깎이' 가 있다. 현대 중간계투 요원 조웅천이다.

사이드암 투수인 조는 1989년 고졸 출신으로 태평양에 입단했으나 직구와 커브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주무기가 없어 벤치를 지키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94년에는 빠른 발을 앞세워 내야수로 뛰게 해달라고 조른 적도 있었다.

지난해까지 10년간 성적은 19승 17세이브 16패. 누구는 한 시즌 20승도 한다는데 내밀기 창피한 성적이었다.

그런 조웅천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지난 시즌을 마치고 떠났던 일본 미야고지마 전지훈련에서 투수 인스트럭터로 참가한 아다치를 만났다. 아다치는 60년대 일본 프로야구에서 2백승 이상을 올린 전설적인 언더핸드 투수다.

조는 아다치로부터 싱커를 전수받아 갈고 닦았다. 싱커는 타자 앞에서 뚝 떨어지는 구질로 헛스윙 또는 내야 땅볼을 유도할 때 많이 쓰인다. 평소 제구력에 자신있던 조는 싱커를 장착한 뒤 몰라보게 달라졌다.

지난해까지 중간계투로 등판했다가 좌타자만 나오면 교체되는 설움을 겪었지만 좌타자 바깥쪽에서 뚝 떨어지는 싱커가 위력을 발휘하자 삼성 이승엽도 두렵지 않을 정도였다.

그 결과 올시즌 조는 8승8세이브 6패(방어율 3.05)로 최고 성적을 올렸고 16홀드로 첫 개인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조가 허리를 지키고 있었기에 현대에서 18승 다승왕 트리오가 나올 수 있었다는 칭찬까지 들었다.

조의 위력은 포스트 시즌에서도 이어졌다.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세 경기에 등판, 6이닝 동안 한 점도 내주지 않고 1세이브를 올렸다.

지난달 30일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는 8회부터 마운드에 올라 일곱타자를 상대하면서 5명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승리를 굳건히 지켰다.

조웅천에게 서른은 이제 잔치의 시작일 뿐이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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