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법원장이 우리법연구회 해체 결단 내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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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제 공개된 ‘우리법연구회’ 논문집(2005년 6월 발간) 내용은 국민의 눈과 귀를 의심케 한다. 주관적 이념과 소신을 배제한 채 법과 객관적 양심에 따라 냉철히 판단해야 하는 판사들이 직접 쓴 글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극적이고 선동적이다. 특정 이념에 함몰된 단체들이 투쟁을 부추기며 쓴 격문(檄文)을 방불케 한다.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은 논문집에서 2002년 ‘효순·미선양 사건’에 대해 “이곳이 아메리카의 53주라도 된다는 것인지, 안방을 점령당하고도…”라며 반미(反美)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출했고, 이라크 파병을 “불법에 대한 방조이자 위헌”이라고 성토했다. 친일진상규명특별법에 대해선 ‘국론통일을 거부한다’는 제목으로 “피 묻은 손을 펴 볼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며 섬뜩한 단어를 동원했다. 법을 수호하는 판사들이 국회에서 통과된 법조차 부정하는 반(反) 법치주의를 부추겼던 셈이다.

법원 내 ‘주류(主流)’가 되기 위해 ‘세력화’하겠다는 의지도 숨김없이 드러냈다. 초대 회장을 지낸 현 대법관은 우리법연구회의 성격을 “법원을 이상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단체”라고 못박았다. 또 다른 전임 회장은 대법관 후보 추천제도와 관련, “우리가 처음 손잡고 싸우고자 했던 고민들과의 싸움에서 패배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했다. 정치적 성향이 강한 ‘사조직’이라는 점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 논문집이 나오고 5개월 뒤 변호사이던 박시환 초대 회장은 대법관에 올랐다.

이러고도 우리법연구회를 ‘순수 학술연구모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5년 반 전에 나온 논문집이라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이후 일련의 사태를 보면 연구회의 성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본다. 정치적·편향적 성향의 활동을 해온 게 확인된 만큼 연구회의 실체는 이제 명확해졌다. 더 이상 이를 묵인·방조한다면 사법의 권력화와 이념화 폐해, 나아가 사법부에 대한 총체적 불신 사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법부 수장으로서 이용훈 대법원장은 사법부 독립과 신뢰 회복을 위해 연구회 해체 문제에 결단을 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