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투시경] 패전 멍에 쓴 '아테네 자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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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번 상대(아테네)는 멀리 떨어져 있을 뿐더러 해군력은 비할 데 없는 전투경험을 가지고 있소. 거기에다 다른 어떤 부문에서도 그들은 최선의 준비를 갖추고 있소. 개인과 국가의 부(富), 선박, 기병, 중무장병을 갖추고 있소.

인구 또한 어느 헬라스 도시보다 우월하며 나아가 수많은 속국(屬國)에서 공세(貢稅)를 거둬들이고 있소. 이런 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안이하게 시작할 수 있겠소?"

그것은 아테네와의 개전(開戰)을 앞두고 신중론을 편 스파르타왕 아르키모다스의 말이다. 그러나 그는 적을 잘 아는 만큼 자기나라도 잘 알고 있어 결코 아테네의 우월함에 위축되지 않았다.

"아테네의 토양이 기름진 만큼 그것을 잃으면 손실도 클 것이오. 때문에 땅이 잘 경작돼 있을 수록 그것을 한층 더 효과 있는 인질로 간주해야 되오.

할 수 있는 한 그들의 땅을 짓밟는 일은 피하고, 그들을 절망 속으로 몰아 넣어 보다 완강하게 저항하도록 해서는 안될 것이오…. 성공에 도취해 콧대를 세우지도 않고 불운한 경우에 처해도 후퇴하지 않는 것은 오로지 우리뿐이오.

쓸데없이 지식으로만 밝아 적의 계획을 정교하게 비판만 할 뿐 행동이 그에 따르지 못하는 그런 일은 없소….

언제나 우리는 적의 계책이 훌륭하다는 가정아래 실천적으로 준비를 게을리하지 말고, 적의 과오에 요행(僥倖)을 바라는 일없이 자신의 준비에 희망을 걸어야 할 것이오. "

이와 같은 그의 의견은 독시관(督視官) 스테넬라이다스의 선동적인 제안에 힘입어 스파르타인들에게 개전의 결의를 이끌어 낸다.

거기 비해 스파르타와의 개전을 주장하는 페리클레스(아테네의 지도자)의 연설은 여러 점에서 대비된다.

"펠로폰네소스인(여기서는 스파르타를 가리킴)은 농민이어서 개인도 국가도 재산이 없습니다. 그들은 가난해서 이웃 나라와의 단기전 외에 장기전이나 해외원정은 해보지 못했습니다…. 아무튼 그들의 최대 약점은 군자금(軍資金)에 있습니다.

그것을 조달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한 그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또 그들의 해군도 요새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요컨대 페르시아전쟁 이후 줄곧 바다를 깊이 연구해온 우리조차 완벽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해양민족도 아닌 농업국민이 도대체 바다 위의 싸움에서 무슨 볼만한 일을 해내겠습니까?"

그도 적(敵)을 알고는 있지만 스파르타 왕과 달리 적의 약점만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과장된 자신감으로 아테네인을 스파르타와의 전쟁으로 이끌고 간다.

위의 연설들은 2천4백년 전 아테네와 스파르타간의 30년 전쟁(BC431~404)을 기술한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에서 인용한 것이다.

시대가 다르고 상황이 다르지만 오늘날 남북간을 비교하면 당시의 스파르타와 아테네를 연상시키는 데가 많다.

경제력과 인구에 있어서의 우위, 신예장비의 위력에 대한 남한 지도층의 믿음은 페리클레스의 연설과 많이 닮았다.

다 알다시피 그 전쟁에서 아테네는 무참하게 패배하고 아테네에 스파르타의 괴뢰정권이 들어서는 치욕까지 당한다.

페스트의 창궐과 페리클레스의 죽음 같은 돌발변수도 작용했지만 동맹국의 이탈과 페르시아의 개입 같은 예측 가능한 변수가 아테네 패배의 더 중요한 원인이 됐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적으로 가른 것은 아이고스폰타모이 해전(海戰)에서의 패배였다.

페르시아의 군자금을 지원받아 해군력을 강화한 스파르타는 페리클레스가 그토록 믿었던 아테네 함대를 격파하고 제해권(制海權)을 장악해 마침내 아테네의 항복을 받아낸다.

역사가 동일하게 반복되지는 않는다는 데 동의한다 쳐도 그것이 주는 교훈까지 온전히 무시해버릴 수 있는 논리는 어디에도 없다.

이문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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