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수백만명 광우병 숨질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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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광우병(BSE)에 대한 영국 정부의 잘못된 대응으로 지금까지 영국에서만 80명이 숨졌으며 수백만명이 더 사망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보고서가 유럽 전역을 충격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2년반 동안의 조사를 거쳐 26일 발표된 영국의 공식보고서에 따르면 마거릿 대처와 존 메이저가 총리로 재임하던 시절 보수당 정부 관리들은 당시 과학적 증거만을 토대로 광우병의 인체 전염가능성을 간과했다.

이들은 1996년 3월 광우병에 감염된 쇠고기 섭취가 광우병의 인체 전염형태인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vCJD)' 의 발병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분명히 밝혀질 때까지 광우병 쇠고기가 인체엔 무해하다고 되풀이했던 것이다.

90년 당시 농업장관이었던 존 거머는 이를 국민에게 확신시키기 위해 TV에 출연, 네살짜리 딸에게 쇠고기로 만든 햄버거를 먹게 하는 해프닝까지 벌였다.

보고서는 바로 이같은 정부의 늑장 대응과 호도 때문에 수많은 희생자가 생겼다고 지적했다. 그간 영국에서 소비된 광우병 감염 소는 1백50만마리이며 vCJD에 감염됐거나 사망한 사람은 84명에 이른다.

이에 메이저 전 총리는 26일 하원에서 "책임을 통감한다" 며 자신의 실수를 사과했다.

닉 브라운 농업장관도 vCJD 희생자와 가족들에게 수백만파운드의 보상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보고서의 파장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영국산 쇠고기 수출이 전면 금지된 96년까지 유럽 각국에 이미 많은 양이 유입됐기 때문이다. 독일에만 80년부터 93년까지 1만3천마리의 영국 소가 수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의 슈피겔 온라인은 26일 "영국 정부가 국민을 고의적으로 오도했다" 면서 "vCJD가 통상 감염 후 여러해(10~20년) 지나 발병하는 만큼 최악의 경우 수만명이 사망할 수도 있다" 고 보도했다.

쥐트도이체 차이퉁도 영국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많게는 수백만명이 더 희생될 수 있다" 고 전했다. 한국에는 영국산 쇠고기가 공식 수입된 바 없다.

베를린=유재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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