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어깨너머 북·미 평화협정 안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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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미관계가 급속진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 이틀간 회담을 했던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서울로 와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면담하고, 또 한.미.일 3국 외무장관 회담을 여는 등 대북문제의 해결책과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문제에 대한 최종 방향을 잡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는 것 같다.

올브라이트 장관의 평양.서울 회견을 통틀어 볼 때 북.미관계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개발 및 시험 중단에 대한 중요한 진전이 이뤄지고 이를 바탕으로 양국관계 정상화를 위한 방안이 논의되는 단계로 보인다.

우리는 원칙적으로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하루빨리, 그리고 정상적인 수준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본다.

다만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그 해결방식에 있어서 한.미.일의 공조체제 유지와 한국의 부담 문제다.

미사일 문제 해결에 있어 일부에서는 벌써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식 다자(多者)부담형식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 핵문제를 해결할 때 북.미간 제네바 회담은 북한식 핵발전소 대신 안전성이 보장된 한국형 핵발전소를 세워주기로 했다.

그래서 KEDO가 만들어졌고 핵발전소가 북한 신포에 건설 중이다. 그러나 북한 핵문제 해결에 드는 비용의 대부분을 한국이 떠안는 결과가 됐다.

북한의 미사일 문제가 또 이런 방식으로 해결돼선 안된다. 현재 북측은 겉으로는 인공위성을 띄울 발사체를 개발한다는 것이고 위성발사를 제3국이 대신해주고 미사일 수출로 벌어들이는 외화를 벌충해줄 경우 발사체 개발을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미사일 위협이라는 미국측 주장 자체가 과장돼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에서 그 위험을 대체한다는 모호한 경비를 한국이 부담한다는 것 자체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다음주부터 이 문제와 관련한 북.미 전문가회담이 열린다는데 정부는 철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북.미간의 평화협정 체결 방식에 관한 것이다. 현재 한반도의 평화체제는 북한측이 이미 준수거부를 선언한 정전협정을 근거로 한 취약한 상태이므로 이를 대체할 평화협정 체결이 시급하다.

그런데 종전 북한이 주장해왔던 것처럼 휴전협정 조인 당사자(유엔군사령관-북한군사령관)간의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려 한다면 이것은 한반도 평화체제의 가장 중요한 당사자인 한국을 배제하는 불완전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만약 이것을 다시금 한국의 어깨너머 북.미간의 문제로 끌어가려 한다면 이것은 현실적으로도, 또 한반도 문제를 '우리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키로 한 6.15 남북 공동선언 정신에도 어긋날 것이다.

정부는 이런 인식 위에서 한.미 공조를 복원하고 남북문제의 기초적 협상권을 회복하는 외교노력을 벌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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