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돋보기] 가정 파탄 책임있는 배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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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8년 동안 별거해 온 데다 다른 사람과 살면서 자녀까지 두는 등 부부 관계가 사실상 파탄상태에 이르렀어도 이에 대한 책임이 있는 배우자의 이혼 청구는 승인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는 주부 홍모(54)씨가 남편 임모(56)씨를 상대로 낸 이혼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이혼을 승인해선 안 된다"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8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고는 어린 자녀를 두고 가출하는 등 배우자로서의 동거.부양.협조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혼인 생활의 파탄에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원칙적으로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상대방도 혼인 관계를 계속 유지할 의사가 없는데도 오기 또는 보복의 감정에서 이혼에 응하지 않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는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1970년 남편과 결혼해 2남1녀를 둔 홍씨는 76년 시부모와 갈등 끝에 가출했다. 84년 다른 남자를 만나 아들을 낳고 지금까지 동거해 왔다. 지난해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내 1, 2심에서 승소했다.

당시 1, 2심 재판부는 "이들 부부의 별거 기간이 28년이나 되고, 현재 부양해야 할 어린 자녀도 없는 만큼 이혼이 사회정의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이혼을 승인했다.

법원은 그동안 이혼 청구 소송에서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는 측의 이혼 청구는 허용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유책주의'원칙을 고수해 왔다. 예컨대 외도한 남편이 부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할 경우 승인하지 않는다는 게 법원의 일관된 입장이다.

이번 판결의 취지로 볼 때 앞으로도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혼인 생활 파탄에 책임이 있는 배우자의 이혼 청구가 법원에서 받아들여지기는 힘들게 됐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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