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모리총리 '납치문제' 발언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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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북한의 일본인 납치 의혹은 북.일관계 정상화의 최대 걸림돌이다. 북한이 요구하는 과거청산은 한꺼풀 벗겨보면 결국 보상금 문제다.

하지만 '납치 문제' 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 북한이 이를 인정할 리 없는 데다 일본에서도 이 문제의 해결 없이 대북 수교를 해선 안된다는 여론이 대세다.

이런 가운데 20일 모리 요시로(森喜朗)총리가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에게 "1997년 자민당 방북단이 이 문제 해결을 위해 피랍자를 제3국에 추방하거나 행방불명자로 처리하면 우리가 귀국시켜 해결하는 방안을 연구, 이를 북한에 제안한 바 있지만 대답이 없다" 고 말했다.

남북한과 북.미관계가 급진전하고 유럽 국가들도 대북 수교를 서두르고 있지만 납치 문제에 발목이 잡힌 일본만은 일절 진전이 없는 데 따른 일본의 초조감을 반영한 말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날 발언으로 모리는 경솔한 처사라며 일본 여야의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이달 말 북.일수교 협상을 앞둔 시점에서 영국 총리에게 할 말이 아니란 비판이다.

나카가와 히데나오(中川秀直)관방장관이 나서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열의의 표현" 이라고 총리를 감쌌지만 모리파 간부는 "자칫하면 내각이 날아간다" 고 우려하고 있다.

야당측은 벌써 이를 추궁할 태세다. 가뜩이나 모리는 일본 외무성 몰래 북한에 친서를 보내 구설에 올랐다.

'제3국 방식' 을 추진해온 쪽에서는 모리의 성급한 발언으로 비난여론이 강하게 일자 이 해결방식이 물건너갔다며 낙담하고 있다.

이번 발언은 다시 모리의 자질 시비를 부르고 북.일관계를 꼬이게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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