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20일 고려대서 특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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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이 20일 오전 고려대 안암캠퍼스에 들어갔다.

"상도동에서 차로 30분 걸리는 고려대까지 오는데 딱 1주일이 걸렸다. 한국 민주주의에 문제가 있는 거다" 란 말로 시작한 이날 강연은 교문 앞 봉쇄사건(13일) 탓에 긴장감 속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강연장(국제관 3층) 안팎에서는 아무런 소동이 없었다. 1주일전 교문 봉쇄를 했던 총학생회 측의 반발 움직임은 없었다. 강연은 행정학과 학생 70여명, 교수 등 2백여명이 참석했다.

함성득(咸成得)교수가 '대통령학 연사' 를 소개한 뒤 YS는 하나회 척결.실명제.전쟁 방지.역사 바로세우기 등 자신의 치적으로 자부하는 것들에 대해 집중강의 했다. YS는 메모지 한장만 놓고 얘기를 풀어갔다.

1시간40분 강의 후 20분간 학생들의 질문을 받았다. 한 학생이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전 대통령보다 '인기없는 전직 대통령' 이라는 얘기가 있다" 고 묻자 분위기가 잠시 어색해졌다.

그러나 YS는 웃으면서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멋이다. 그러나 영원한 YS맨도 많다" 고 가볍게 넘겼다.

다음은 강연 내용.

◇ "그냥 놔두면 全.盧씨 죽을 것 같아…" =박계동 의원이 "노태우 계좌에 2백억원이 있다" 고 폭로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학생들이 연희동을 습격해 대치가 계속된다는 보고를 받았다. 경찰청장과 하루에 열번씩 전화했다.

"어째 데노" 물으니 청장이 "全.盧통 집에 결국 불이 나겠습니다" 라고 보고하더라.

그때 참 고민 많이 했다. 그냥 놔두면 두 사람 결국 죽겠더라. 도리가 없더라. 검찰에 "철저히 조사해 드러나면 구속하라" 고 지시했다. 금융실명제를 하지 않았으면 전두환.노태우가 수천억원 가진 것 모르고 넘어갔을 거다.

◇ "전쟁하자는 클린턴과 대판 싸웠다" = "북한 버릇을 고쳐줘야 한다" 며 클린턴이 전쟁하겠다고 해 30분을 전화로 싸웠다.

"당신 마음대로 한반도에서 전쟁일으키면 나는 우리 군인 단 한명도 동원안한다" 고 했다. 클린턴이 요청해 백악관 특별팀이 와 두사람간 비밀직통전화도 놨다. 그만큼 급박했다.

◇ "IMF, DJ도 책임" "누구도 경고 안했다" =불행한 일이다. 국민께 여러 차례 사죄드렸다. 지금 경제가 그때보다 훨씬 어렵다. 당시 경제 걱정을 많이 했다. 관료.언론.학자.재벌들을 만나 "경제 괜찮나" 고 수없이 물었다. 그 때마다 "대단히 좋다" 고 말했다.

참 기가 막힌다. 어느 누구도 경제위기라고 말 안하더라. 김대중씨가 경제위기를 자초했다. 노동법 개정.한국은행법.기아사태 모두 김대중의 야당이 필사적으로 못하게 했다.

다음은 학생들과의 질의응답.

- 단임제가 부작용이 많은데.

"중임제로 임기가 8년이 되면 독재로 간다. 5년 그대로가 좋다. 내각제를 얘기하는 사람이 있는데 장면(張勉)정권때 해봤지만 힘이 없다."

- 김현철씨가 개입한 한보문제가 경제위기의 원인 아니냐.

"현철이를 과대평가하지 마라. 아무거나 관여할 그런 힘이 없었다. 현철이는 틀림없이 다음번에 국회의원 나온다. 나도 26세 때 아버지가 반대했는데도 국회의원 출마했다. 자식이 내 말 들을 거라고 생각 안한다. "

- 최근 활동의 의미는.

"나는 식물인간이 아니다. 살아있는 동안 말할 것이다. 옳은 일이다. "

YS는 "47년 정치생활 동안 영광의 시간은 짧았다. 그러나 고뇌와 고통의 시간은 길었다" 고 강의를 마감했다.

이수호.박현선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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