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 돋보기] 프랑스 대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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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프랑스는 구축함 1척과 함께 지상군을 파견하기로 했다. 현역과 예비역에서 지원자를 뽑아 1개 대대를 편성했다. 해병대 출신 위주의 1중대, 파리경비대 출신의 2중대, 공수·외인 부대 출신의 3중대와 본부·지원 중대로 이뤄졌다. 인원은 400여 명. 그해 10월 25일 마르세유를 떠나 11월 29일 부산에 도착했다. 적응훈련을 거쳐 12월 중순 미 2사단 예하 23연대전투단(RCT)에 배속됐다.

51년 1월 1일 강원도 횡성 북방에서 첫 전투에 참가했다. 주로 중부전선에서 격전을 치르면서 명성을 얻었다. 가장 유명한 게 지평리 전투다. 프랑스 대대는 상급부대인 23연대전투단과 함께 그해 2월 13일 지평리 전투에서 포위 공격을 해오는 중공군을 나흘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물리쳤다. 숨은 중공군을 이끌어내기 위한 미끼작전이었다. 여기서 패한 중공군은 북위 38도선 근처까지 후퇴해야 했다.

그해 5월 중공군 춘계공세 때도 강원도 홍천 북쪽에서 적에 포위됐지만 뚫고 나왔다. 그해 가을에는 ‘단장의 능선’ 전투에 투입돼 많은 희생을 치른 뒤 승리를 이끌어냈다. 휴전 때까지 연인원 3400여 명이 참전해 262명이 전사하고, 1008명이 부상했다. 규모는 작지만 용맹하고 전투력이 뛰어난 부대로 평가받는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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