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 기자의 푸드&메드] 위험한 대장균, 유익한 대장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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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조선시대의 형벌은 태형·장형·도형·유형·사형 등 5형이 기본이다. 죄의 경중에 따라 가벼우면 태형(苔刑·10∼50대 부가)이나 장형(杖刑·60∼100대 부가), 무거우면 요즘의 징역형인 도형(徒刑), 귀양을 보내는 유형(流刑), 극형인 사형(死刑)이 내려졌다.

식품위생법에도 6개월 이하의 징역·영업정지·벌금·과징금 등 다양한 처벌조항이 있다. 잘못한 만큼의 죗값을 받도록 돼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각종 식품 유해물질에 대해 대중과 미디어가 내리는 ‘형량’은 ‘엿장수 맘대로’다. 극히 위험한 물질이 ‘태형’에 그치는가 하면 유해성이 거의 없는 물질에 중형이 선고되기도 한다. 유해성·위험성보다는 운수 소관이란 뜻이다.

식품 유해물질에 관한 한 전문가는 ‘금성인’, 일반인은 ‘화성인’이다. 일반인은 농약·식품 첨가물·식중독균 등 병원성 미생물 순서로 두려움을 느낀다. 반면 전문가(미국 FDA 직원)는 병원성 미생물을 식품 위해 요인의 첫째로 꼽는다. 다음은 비만·당뇨병 등 영양학적 불균형을 일으키는 식품, 다이옥신·중금속 등 환경 오염물질 순이다.

최근 전문가들은 가장 우려하는 병원성 미생물에 대해 적당한 ‘형량’을 정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미생물 위해도 평가’를 통해서다.

과거엔 식중독균 등 병원성 미생물에 대해선 무조건 불검출이 기준이었다. 한 마리라도 나오면 식용으로 부적합한 것으로 판정했다. 그러나 요즘 일부 식중독균에 대해선 ‘미생물 위해성 평가’를 거쳐 일정량의 오염을 허용하고 있다. 예로 생식제품 1g당 바실러스 세레우스균(식중독균의 일종)이 1000마리 미만 존재하면 판매가 가능하다.

수많은 미생물 중에서 전문가와 일반인의 간극이 가장 큰 것은 대장균이다.

소비자는 대장균이라고 하면 심한 거부감을 보인다. 과거부터 식품의 대표적인 유해 세균으로 인식해와서다.

그러나 전문가는 대장균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대장균은 이름대로 종류가 2만가지 이상인데 대부분 병을 유발하지 않는다. 건강에 유익한 측면도 있다. 사람에게 필수적인 비타민 K를 생성하거나 다른 (유해)세균이 장에 서식하는 것을 막아준다.

엄밀히 말하면 대장균과 대장균군은 다르다. 대장균군은 사람·동물의 대장에 사는 대장균과 그와 비슷한 세균을 통틀어 일컫는 용어다. 대장균군 역시 식중독 등 질병을 일으키지 않는다. 식품 오염의 지표로 흔히 쓰인다.

과거에 현명한 판관이 대장균이나 대장균군 사건을 맡았다면 ‘훈방’이나 기껏해야 ‘태형’ 정도를 내리지 않았을까 싶다.

일부 대장균은 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병원성 대장균이다. 미국·일본에서 대형 식품사고를 일으킨 O-157균이 대표적인 대장균이다. O-157균에 감염되면 혈변·요독증을 일으키거나 신장이 망가질 수 있다. 위험도를 기준으로 한다면 O-157균의 ‘형량’은 ‘도형’ 이상이다.

대장균이나 대장균군에 대한 막연한 우려는 과거 우리의 식품 위생상태가 형편 없을 때의 소산이다. 그러나 지금은 식중독균의 위험도를 면밀하게 계량화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앞으로 식품안전당국이나 기관에서 대장균·대장균군 검사 결과를 발표할 때는 그것이 병원성인지 아니면 비병원성인지 함께 밝힐 필요가 있다. 만약 비병원성이라면 해당 제품에 대한 수거·폐기·행정 처분만으로 충분해 보인다. 이를 공표해 소비자의 막연한 불안을 부추기고, 기업에 과도한 피해를 주는 사례가 반복돼서는 안 될 것이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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