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주먹'에서 프로복싱 챔프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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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교도소의 높은 담장도, 어두웠던 과거의 상흔도 챔피언을 향한 한 수형자의 꿈을 가로막지는 못했다.

천안 소년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현주환(23)씨는 6일 전북 장수군민체육관에서 열린 수퍼페더급 한국타이틀매치에서 박원표(중앙체육관)선수를 이기고 챔피언에 올랐다. 수형자가 프로복싱 한국챔피언이 된 것은 한국프로복싱 역사는 물론 한국교정사상 처음이다. 현씨는 19세이던 2000년 7월 폭행 사건에 연루돼 5년형을 선고받고 2001년 4월 천안교도소에 수감됐다. 한순간의 실수로 인생의 황금기를 철창 안에서 보내야 했던 것이다.

"이대로 시간을 보낸다면 나머지 삶도 엉망이 될 것 같았습니다. 운동을 통해 제 한계를 극복해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수감되자마자 교도소 복싱부인 '충의소년단'에 지원했다. 1984년 설립된 충의소년단은 그동안 아마추어 전국.지방대회에서 금메달 123개 등 모두 195개의 메달을 따낸 복싱 명문이다. 지금은 현씨를 포함해 14명의 수형자가 속해 있다.

이곳에서 현씨는 82년 미국에서 경기 도중 숨진 비운의 복서 김득구의 라이벌이었던 최한기(47)사범의 지도로 복서로 성장했다. 고3까지 레슬링 선수로 활동하며 닦은 체력도 큰 도움이 됐다.

2003년 전국 신인아마복싱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데 이어 지난 2월엔 제31회 전국복싱신인왕대회에서 수퍼페더급 신인왕과 대회 최우수선수(MVP)를 동시에 거머쥐었다. 그런 뒤 6일 열린 챔피언전에서 현씨는 연습 도중 다친 오른쪽 손의 통증을 경기 내내 참아가며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뒀다.이날은 복싱을 한다고 할 때 극구 말리던 부모님도 대구에서 달려와 아들의 승리를 축하해 줬다.

"세계챔피언 최다방어(17차)와 최다연승(36승) 기록을 갖고 있는 유명우 선수 같은 복서가 될 겁니다."

내년 7월 자유의 몸이 되는 현씨는 지금도 하루 여섯 시간씩 교도소의 샌드백을 치며 세계챔피언의 꿈을 키우고 있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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