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연구영역 담을 허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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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연구계도 확 달라져야 합니다. "

올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자 지금까지 '기초연구는 네가, 응용연구는 네가, 생산기술연구는 네가' 하는 식으로 연구영역을 놓고 논쟁을 일삼아 온 우리 학계.정부출연연구소.산업계에서 이구동성으로 터져 나오고 있는 자성(自省)어린 각오의 소리다.

그동안 순수 기초연구쪽의 몫이었던 노벨상이 이번에 응용과학과 상업화로 이어지는 실용적인 연구분야에 주어졌기 때문이다. 이를 한 시대의 획을 긋는 사건(epoch-making)으로 치부하는 사람도 있다.

고등과학원의 김정욱 원장은 "경제성을 무시한 '나홀로 연구' 는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다는 시대적 추세가 올 노벨상 수상자 선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셈" 이라고 논평했다.

이번 수상자들의 연구결과는 실제로 사회적으로는 일상생활의 변화를 주도하고, 산업적으로는 지적재산권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물리학상을 받는 화합물 반도체와 레이저 다이오드, 집적회로 반도체칩 등은 현대 정보통신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기술이다.

휴대폰에서부터 PC.세탁기.인공위성.장난감.인터넷.광통신 등 우리 주변의 일상용품과 산업용품엔 온통 이들 기술이 녹아들어 있다.

그것도 주변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이 없으면 아예 그같은 제품과 기능의 탄생이 어려웠을 정도다.

화학상인 전기가 통하는 플라스틱도 고분자를 이용한 2차전지로서 상업화돼 휴대폰.PC, 나아가 전기자동차의 연료전지 등으로 활용폭을 넓혀가고 있다.

화학상의 맥더미드는 미국 등 각국에 20여개의 특허를, 물리학상의 킬비는 60여개의 반도체기술 특허를 갖고 있다.

화학상을 받는 일본의 시라카와 히데키 교수는 81년부터 90년까지 통산성의 국가프로젝트를 주도하면서 학계와 산업계.정부연구소를 모두 끌어들여 기초.응용.상업화연구를 동시에 진행시켰다.

가네보.도레이 등 많은 업체들이 이 연구결과를 발전시켜 전지.엔지니어링 플라스틱제품 등에서 세계시장을 장악하게 됐다는 사실도 주목거리가 아닐 수 없다.

대한화학회 진정일(고려대 교수)회장은 "과학과 기술이 모든 분야에서 융합되는 21세기를 맞는 지금, 이번 노벨상을 계기로 우리 연구계도 뭉쳐야 한다" 고 강조했다.

박방주 정보과학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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