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 무혈혁명 성공 배경·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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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3일간의 시위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의 13년 철권통치가 허물어졌다.

새로 권력을 넘겨받게 된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에겐 옛 정권의 반격을 막으면서 혼란을 수습해 새로운 유고연방을 건설해야 할 쉽지 않은 임무가 주어졌다.

밀로셰비치의 몰락은 전격적이었다. 지난달 24일 실시된 대선 이후 끊임없이 소요가 있었지만 총격이 오가는 시위는 아직 없었다. 그런데도 5일 있었던 단 한번의 대규모 시위로 밀로셰비치 아성은 무너진 것이다. 이에 대해선 설명이 많다.

우선 서방의 경제제재로 국가살림이 파탄에 이르러 국민의 불만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고, 줄곧 분열양상을 보여오던 야당이 결집했던 게 결정적 계기라는 분석이다.

1991년 유고 내전으로 시작된 서방의 경제제재는 98년 세르비아의 코소보 공격 이후엔 해외투자 및 석유 수출금지 조치로까지 확대돼 유고는 극심한 경제난을 겪어왔다.

지난 3일부터 시작된 총파업 중 탄광지역 파업이 거셌다는 것은 공산정권의 지지기반이었던 비도시 지역과 저소득층의 민심이반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야당의 단합은 밀로셰비치에게 치명적이었다. 민족.종교.지역기반 차이로 난립하던 20여개의 야당은 대선에서 코슈투니차가 앞서나가자 그를 중심으로 결집했다. 무력을 행사하는 군.경찰이 중립적이었던 것도 변화의 조짐이었다.

유고군은 선거 직후 중립을 선언해 국민의 불안감을 덜어줬고 야당은 군 실세에게 "정치보복은 없을 것" 이라고 약속했다.

정권을 장악한 유고 야당은 "밀로셰비치가 5일 밤 군 수송기를 타고 해외로 떠났다" "동남부 국경지대 벙커에 숨어 있다" 등의 소문이 무성한 가운데 한때 밀로셰비치의 직할부대인 특수경찰대가 역공해올 것을 우려했었다.

그러나 6일 밀로셰비치가 이고리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만나 정권 이양 의사를 밝히는 장면이 국영TV에 공개됨으로써 코슈투니차의 정권장악은 완전히 확정됐다.

이제 국제사회는 코슈투니차의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아무래도 그는 서방에 보다 유화적인 태도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를 자처하고 반미 성향도 있지만 경제난 타개를 위해 서방의 도움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는 또 밀로셰비치에게 우호적이던 러시아에 대해선 서운한 감정을 이미 여러 차례 드러냈었다.

코슈투니차는 몬테네그로 공화국의 유고연방 탈퇴움직임과 코소보지역 독립요구, 밀로셰비치 전범처리 등 산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민족주의자인 그는 이 세가지 문제에 모두 반대의사를 밝혀왔다.

하지만 서방의 경제적 도움을 얻으려면 어느 정도 타협안을 제시할 수도 있다. 아직 확고한 정치적 기반을 갖추지 못한 그가 사회주의적 경제체제를 어느 정도 개혁할지에 유고의 미래가 달려 있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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