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다시 뜬 YS 어디로 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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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전직 대통령이라고 경로당에나 앉아 있으란 법이 있나. " 얼마 전 YS의 민주산악회(민산) 재건 선언을 두고 측근이 한 말이다. 그는 "정치인이 정치하겠다는 건 권리이자 자유" 라며 YS의 정치 복귀를 부정하지 않았다.

민산은 'YS 대통령 만들기' 의 현장 전위대 역할을 했다. YS가 1차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직후인 1981년 6월 결성했고 집권 후 사조직 척결을 이유로 직접 해체했다.

정치권에선 민산을 기반으로 어떻게든 YS파벌이 재등장할 것으로 본다. 소외돼 있는 영남세력을 규합할 가능성을 따져보는 측도 있다.

파벌정치. 이는 80년대 중반 이후 우리 정치를 상징해온 말이다. 재야(在野)정치인에 대한 5공의 정치규제가 풀리면서다. 확고한 지역기반을 가진 보스와 추종자들로 뭉친 파벌정당들이 정치를 움직여왔다.

YS.DJ가 그 대표다. JP도 있다.

민주화 투쟁의 리더였던 YS와 DJ는 정치해금 이후 한층 커진 권위와 관록으로 막강 파워를 이뤘다. 이들은 그후 뭉치거나 싸우면서, 권력을 누리거나 빼앗기면서 오늘의 정치환경을 만든 주축이다.

이를 두고 혹자들은 '패거리 정치' '사당(私黨)' 이라며 "청산하라" 고 했다. 이념.정책으로 뭉친 정당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배고프면 밥 먹으라" 는 말 만큼이나 하나마나한 소리였다. 우리 정치현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6.25전쟁을 치른 반공국가에서 이념의 폭은 좁을 수밖에 없었다.

긴 군사정권은 정치구도를 '민주 대 반(反)민주' 로 단순하게 만들었고, 그 속에서 YS.DJ의 지향점은 민주였다. 그리고 국민들은 그 두 사람을 차례로 대통령으로 뽑아줬다.

그렇게 10여년이 갔다. 그들이 뒷전으로 물러날 2002년 대선이 2년 뒤다. 파벌지도도 2金(DJ.JP)1李(이회창)로 바뀌어 있다.

거기에 YS가 다시 들어가려 한다. 주변에선 국제통화기금(IMF)체제로 훼손된 50년 정치 거목(巨木)의 명예와 정치적 파워를 되찾겠다고 진작부터 말했었다.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그는 정치 복귀를 영남 연고권과 왕년의 야성(野性)을 되찾는 데서 출발하려 한다. 그래서 DJ를 독재자로 몰아치고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며칠 전 한나라당과 벌인 부산 단골식당 해프닝은 부산 연고권 방어 측면도 있다.

이런 선상에서 YS측은 두가지 이슈를 잡고 있다 한다.

첫째, 남북문제다. DJ의 대북정책을 거침없이 비판하는 이유를 한 측근은 "국민 다수가 여전히 보수성향이다. 하지만 남북간 문제점을 누구 하나 말을 못한다. 남북관계가 실망을 주는 순간 여론은 YS를 바로보게 된다" 고 말한다.

두번째가 자유민주주의론이다. DJ에 대한 독설을 "민주주의 가치가 훼손되는 걸 막기 위해" 라고 설명한다. 진짜배기 야당정치의 면모를 보여주겠다는 거다. "국가원로로서 지금 이 두가지를 해야 하고 그것을 꿰나갈 조직으로 민산이 필요하다" 는 얘기다.

박수를 보내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대북관을 흔쾌히 받아줄 국민들이 얼마나 되고, 국익에는 과연 도움이 될까.

더 강한 대여투쟁을 국민들은 과거 민주화 투쟁 때의 늠름한 모습으로 봐줄 것인가, 아니면 진저리나는 막말정치와 지역갈등이 도질까 걱정할 것인가.

이제 정말로 '패거리 정치 청산' 얘기가 나오지는 않을까. 점프한 YS가 어떻게 착지(着地)할 것인지 여러 갈래의 눈길이 쳐다보고 있다.

김석현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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