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 증시 버팀목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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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연기금이 주식을 꾸준히 사모으면서 증시의 주도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연기금은 지난 8월 초 이후 주식을 본격적으로 사들이기 시작해 이제껏 8211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외국인들이 한동안 주식을 팔아치웠던 지난달 하반기에도 연기금은 줄기차게 주식을 사들였다.

◆ 왜 사나=경기 흐름이 좋지 않고 내년 이후 전망도 여전히 어두운데 연기금이 주식을 계속 사들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길게 봤을 때 채권 등 다른 어떤 투자 수단 못지않게 높은 수익을 낼 것이란 기대에서다.

국민연금의 온기선 투자전략팀장은 "국민연금은 주식이 장기적으로 고수익을 낼 것이라고 전망한다"며 "주가의 단기 등락에 개의치 않고 매달 비슷한 규모의 주식을 계속 사모으는 투자전략을 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기흐름에 상관없이 당분간 주식 보유 규모를 늘려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무원연금기금의 박종선 과장은 "기금이 올해 주식투자에서 이제껏 7.9%의 수익을 올리는 등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증시의 장기 전망을 밝게 보고 있어 주식투자 비중을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국증권연구원의 고광수 연구위원은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의 자산운용 규모가 빠르게 불어나고 있어 지금까지 해온 대로 채권 중심으로는 투자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채권 수익률이 3%대로 떨어진 상황에서 주식에 손을 대지 않고는 연기금이 적정 수익률을 유지하기 힘들어졌다"며 선진국 연기금들도 비슷한 경로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한국 연기금의 주식투자 비중은 현재 6.2% 선으로 스웨덴(58.8%).일본(37.5%).캐나다(45.5%) 등 선진국 연기금들과 비교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정부도 연기금의 주식투자 제한을 없애는 등 제도적 지원에 나서고 있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연기금이 주식을 사들이면서 외국인들에게 과도하게 넘어갔던 국내 주식을 되찾아오는 효과도 생긴다"고 말했다.

◆ 증시 안전판 기대=연기금의 주식투자를 선도하고 있는 국민연금의 경우 올 들어 9월 말까지 주식에 투입한 자금이 2조원을 넘는다. 올해 2조8000억원이 책정돼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8000억원 정도가 4분기 중 주식시장으로 들어오게 된다.

국민연금을 포함해 올해 연기금이 주식에 투자하기로 한 금액은 4조7000억원. 정부는 내년엔 연기금의 주식투자 금액이 5조5000억원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차은주 현대증권 수석연구원은 "외국인의 과다한 주식보유로 증시의 유통물량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매달 2600억원 정도씩 들어올 연기금 매수세는 증시의 안전판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일부 증시 전문가들은 "향후 경기 전망이 어두운 상황에서 연기금들의 적극적 시장 참여는 외국인들에게 고가 매도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며 "경기 흐름 등을 감안한 탄력적 운용전략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윤혜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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