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한자병용도 국가경쟁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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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가 한자병용(倂用)을 포기한 적이 언제였는지, 또 왜 포기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그리고 학교에서 한자를 제대로 배우지 않은 세대가 한글만 갖고도 생활에 전혀 불편이 없는지도 궁금하다.

한글만으로도 문제 없이 살고 있다면 이는 한글 전용(專用)을 주장했던 분들 덕분이 아니라 세종임금님 덕이다.

그런데 정상적인 교과과정이 아니라 사(私)교육에서 익힌 한자와 인터넷 화면에 떠도는 새로운 용어들 틈에서 살고 있는 세대들이 넓은 세상을 만나면서 언젠가는 답답함을 맛보게 될 것이란 사실이 안타깝다.

거창한 예가 아니더라도 우선 잦아지는 해외여행에서(한자문화권뿐 아니라 세계 웬만한 도시 어디든 있는 중국인촌을 찾게 되더라도), 아니면 사업을 위해 중국이나 일본 등지를 방문할 때 반드시 어려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고시 준비하는 이들이 법전(法典) 익히는 데 겪는 어려움은 소수에만 해당되는 일이니 접어둔다치고.

그 정도의 불편을 민족정기를 내세우며 우리 글을 고집하는 거룩한 일과 비교?수 있을까 말하는 이들이 있겠지만, 그들(한글전용을 부르짖었던 이들)은 학창시절 한자를 알차게 배운 이들이 대부분이다.자신들은 별 불편을 못느끼는 이들이란 말이다.

사실 언어를 다듬고 발전시키는 일이 쉬운 작업은 아니다.한글학자들의 관심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모르나 한글 맞춤법이나 외래어 표기법을 정비하는 일은 물론이고 외국어를 제대로 사용하는 법까지 챙겨야 한다고 본다.

국경이 희미해진 세상에 언어는 경쟁력이고 외국어를 배우는 까닭은 단순한 편이(便易)만이 아니라 바깥세상 사람들의 사고(思考)와 문화를 익히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자기 언어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한 프랑스 사람들이 영어(실제는 미국식 영어)문화의 침투를 두려워하며 온갖 궁리를 하고 있는 것도 언어가 갖는 힘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혹시 세계적 언어로서 영어의 위력을 알아차리고 초등학교 때부터 가르치는 데 너그러웠다면 우리 문화 속에 녹아 있는 '프리미엄' 인 한자는 왜 포기했을까.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한자표기 이름을 갖고 태어난다.

학창시절 조금만 고통을 감수하면 세계 인류 네사람 가운데 하나가 쓰고 있는 언어와 문화를 대충 이해할 수는 있는데도 팽개친 이유를 정말 모르겠다.

한국 내 중국어 붐은 벌써 오래전 일이고 일본문화 개방 바람을 타고 일본어 배우는 우리 젊은이들이 부쩍 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들이 베이징(北京)이나 도쿄(東京)의 어학원에서 한자 익히기에 쩔쩔 매는 피부색 다른 이들마냥 애쓰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거꾸로 한글이 배우기 쉽다고 말하는 외국인을 나는 만난 적이 없다.세종임금 탓이 아니라 한글을 국제적 언어 반열에 낄 정도로(물론 나라의 힘에 달렸지만) 배우기 쉽게 만드는 노력을 게을리 한 후세들 탓이다.

나는 한글전용을 택한 우리가 우리말 다듬는 데 게을리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한자라는 경쟁력을 너무 허망하게 포기했다고 본다.

정부의 탓인지 아니면 사용자 편의주의를 앞세운 언론사들의 바람몰이 탓인지 몰라도 분명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가까워지면서 생소한 북한식 표현들이 우스개처럼 한국사회에 나돌아 다닌다.이런 현상을 보는 우리 한글학계의 입장은 어떨까. 한글전용에 힘을 얻었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우리 글 지키는 데 북측보다 소홀했다며 자책하고 있을까. 아니면 세종임금님이 통일 앞당기는 데 공헌하실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을까.

'한글은 우리 문화를 담는 그릇' 이라며 한글날을 국경일로 승격시키자는 일부 정치인들의 주장에 딴죽을 걸 생각은 없다.우리 말 소중함을 기리는 마음에서 출발했으리라 믿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우리 글 좋은지 잘 아는 현명한 국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한민족의 우수성을 다짐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어렸을 때 큰 힘 안들여 배우고 익혀 넓은 세상에서 경쟁력 살릴 수 있는 한자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일상생활에서 친근하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챙겨보는 일이 급하다.바깥에서 맞는 한글날이 모처럼 절절하다.

길정우 <중앙일보 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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