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 "밀로셰비치 물러나라" 시위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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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유고 대선에 야당후보로 출마한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가 대선 결선 투표를 거부하고 정권교체 투쟁에 들어간 가운데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현 대통령은 28일 여당에 결선투표 준비를 지시, 유고사태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아직까지 군과 경찰은 사태에 개입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야당 연합은 밀로셰비치의 퇴진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호소하고 있고 시위도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상황이다.

특히 국민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세르비아 정교회도 코슈투니차 후보의 승리를 공식 선언하고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요구, 밀로셰비치의 입지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팽팽한 대결=27일 밤(현지시간) 유고 연방 수도인 베오그라드에선 약 20만명의 군중이 시내 한복판 광장에 모였다. 노비사드.니슈시에서도 3만명 이상이 도심으로 몰려나왔다.

지난해 가을 밀로셰비치 대통령 퇴진요구 시위가 절정에 달했을 때의 두배에 가까운 시민들이 운집한 것이다.

이들은 "결선투표는 있을 수 없다" 며 밀로셰비치가 퇴진을 선언할 때까지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밀로셰비치 대통령은 여당인 사회당(SPS) 고위 당직자들과의 회의를 주재한 뒤 "당면 현안은 대통령 결선투표" 라며 이를 준비하도록 지시했다고 유고 국영 탄유그 통신이 보도했다.

◇ 종교계의 입장=세르비아 정교회는 28일 최고 대표자 회의를 열어 코슈투니차 후보를 새로운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코슈투니차 진영에 "가능한 한 평화적이고 엄숙한 방법으로 정부와 의회.지방자치정부를 인수해주기 바란다" 고 밝혔다.

유고연방에서 교회는 직접적인 정치적 권한은 없지만 '청렴의 보루' 로서 국민 사이에 막강한 도덕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 군.경찰 동향=유고 연방군 사령관 네보이사 파브코비치 장군은 27일 "폭동 사태와 같은 내부적인 일엔 개입하지 않겠다" 며 정치적 중립을 선언했다. 그는 그러나 외국의 개입이 있을 때는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정부에 힘을 실어줬다.

외신들은 밀로셰비치 대통령이 유고 연방군보다 대통령 직속의 전투경찰대를 전면에 내세울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8만~10만명에 이르는 전투경찰대엔 코소보를 공격했던 군인들이 대거 포함돼 있고 헬기.장갑차로 무장, 군 못지 않은 전투력을 갖고 있다. 또 밀로셰비치의 최측근들이 핵심을 장악하고 있다.

◇고민스런 국제사회=미국.영국.프랑스 등은 연일 밀로셰비치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지만 실제적인 압박 수단이 없어 고민하고 있다.

영국 BBC방송은 서구 국가들이 군사적 위협을 가할 경우 밀로셰비치가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외치며 계엄령을 선포하도록 도와주는 꼴이 된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러시아 외무장관과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8일 "유고 국민들은 어떤 내.외부 간섭없이 스스로 의사를 표현할 권리가 있다" 는 등 유고 '국내 문제' 에 대한 외국의 개입을 경고, 사태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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