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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기고] "공익분야 일자리 만들어 자활 활성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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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스스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사람들의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것은 문명국가로서는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는 외환위기에 따른 심각한 실업난과 빈부격차 확대 속에서 급히 추진됐다는 특징이 있다.

이로 인해 국민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결점이 있는 상태에서 출발한다. 관련 복지.고용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할 뿐 아니라, 있는 자원마저 제대로 연계.활용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보호에서 제외된 사각(死角)지대의 빈곤층이 있는가 하면, 속임수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시행을 늦추자 한다면 절박한 절대 빈곤층의 사정을 모르는 이야기다. 지속적인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통해 기초생활보장의 수준, 효과적인 지원방법, 필요한 인프라 구축방안 등이 보완될 수 있다.

특히 정부는 좋은 일을 한다는 명분에 도취될 것이 아니라, 일의 선후를 냉정히 따져 하나씩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내년도 기초생활보장예산은 모두 3조원에 가까운 수준이다.

학계.시민단체는 물론 정부도 이만한 금액이 제대로 전달.집행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7천2백명의 전담 공무원이 필요하다는 데 이견이 없다.

그러나 아직 필요인원의 3분의2에 불과하다. 2백억원만 더 지출하면 충분한 전담 공무원을 확보할 수 있지만, 그것을 아끼려다 3조원 지출의 정당성마저 잃고 있는 것이다. 사회복지 전달의 일선 책임자인 전담 공무원을 확충하고 전문성을 높이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

지방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그동안은 중앙정부가 중심이 돼 제도설계와 준비에 치중해 왔다면, 시행단계에서는 빈곤층과 가장 가까이 있는 자치단체가 이 문제를 책임지지 않을 수 없다.

누구에게, 무슨 도움이 필요한지 찾아내고, 지역사회의 민간자원까지 결집해서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또 실업문제가 완화된 만큼 그동안 운영되던 실업대책반을 자활지원반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생계보호대상자 약 1백60만명 중 20%는 근로능력이 있다. 당사자들도 생계비 지원보다는 일자리를 원한다. 자활을 돕는 게 가장 큰 복지인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자활은 쉽지 않다. 생계보호를 받게 됐다는 것은 이미 노동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기술과 교육수준이 낮은데다 자금도 없다. 직업훈련.창업지도.자금알선 등 체계적인 자활지원과 함께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임시적인 '일거리' 가 아니라 생계유지가 가능한 '일자리' 를 만들기 위해서는 종전의 실업대책과는 다른 발상이 필요하다.

저소득층 무료간병, 장애인 편의시설 확충, 숲가꾸기 등 공익적인 분야에서 10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드는 게 가능하다.

현재 70개에 불과한 자활후견기관을 신속히 확충하고, 충분한 운영비를 보장해야 한다. 1백22개소의 고용안정센터도 마찬가지다.

특히 정부는 예산부족과 취약한 인프라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전국 30개 정도 지역에서 집중적인 모형개발에 나설 필요가 있다. 적은 비용으로도 한국적인 자활사업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근로소득공제 제도 확충, 여성가구주 자활지원, 다양한 사회복지서비스 확대, 소득파악 투명화, 자원봉사 활성화 등의 내실을 다지는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특히 교회.기업.노동조합 등 지역사회 공동체가 빈곤문제 해결을 함께 책임지는 단계까지 나가야 한다.

김수현 <서울시정개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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