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지뢰제거 남북이 함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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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남북한간에 군비통제시대가 열린다. 지난 8년간 미국과 북한간에는 북의 핵무기 개발시설을 동결하고 미사일 발사를 일단 중지시켰다.

이것은 전쟁의도를 약화시키는 신뢰구축이라기보다 전쟁능력을 없애거나 잠정 중지시킨 것이니 군축이나 제한조치에 가깝다.

경의선과 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남북한이 지뢰를 제거하니 이것 또한 군축에 가깝다. 휴전선 1백55마일에 비해 너무나 좁은 1백m에 불과한 구간이지만, 정전협정 관할지역 내에서 남북한이 직접 지뢰와 철조망을 제거하게 되니 군비통제가 아니겠는가.

어제부터 남북한은 분단 사상 최초로 국방장관회담을 하고 있다. 이 회담에서 북측은 경의선 복원 관련문제를 다루고자 하고, 남측은 이를 포함한 광범위한 신뢰구축 조치를 다루고자 한다.

회담의 단기적 과제는 경의선 복원과 도로건설을 둘러싼 이슈가 될 것이고 본격적인 신뢰구축과 군축은 조금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5주년을 맞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서 배울 점이 있다면 남북한.미국.일본이 공동으로 사업을 출발시켰고 남북한 근로자가 공동으로 건설사업에 참가했기 때문에 많은 난관을 딛고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경수로 건설을 조기에 끝내는 것이 관련국들의 공동목표였기 때문에 북한 잠수함 남파, 협상에서 북한의 생트집과 남한 비하, 북한의 송배전선 건설 요구 거절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이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고 남북한 인력간에 신뢰가 끈끈하게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간에 경의선과 도로건설이라는 구체적 프로젝트를 시작함은 신뢰를 쌓을 뿐 아니라 본격적 군비통제에 활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남은 북의 기습공격 활용 가능성, 정전협정 무효화 동조, 경의선 복원과 전구간 유지에 들 비용이 걱정이다.

북은 남측의 내왕으로 인한 체제붕괴 가능성, 탈북자의 증가, 혹시라도 미군과 남한군의 활용 가능성 등을 우려할 수 있다.

이 우려를 제거하고 상호 신뢰를 튼튼히 하기 위해서는 군사분계선 남쪽은 남한이, 북쪽은 북한이 각각 지뢰제거와 철로건설을 할 것이 아니라 같이 하는 것이 백번 낫다. 철도.도로 건설 구간 공동조사와 지뢰 공동제거 내지 상대측 지역 참관을 실시해야 한다.

경의선 도로개통이 미칠 군사적 효과 상호 토의와 개성산업관광단지 남쪽과 측방의 군대 후방배치 등을 종합적으로 토의하고 실현시킨다면 범위는 작아도 신뢰구축과 위협감소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는 시범사업이 될 것이다. 이를 성공시키게 되면 남북한 군사관계에 엄청난 파급효과가 올 것이다.

남북한 군대가 사업을 같이 해나가면 신뢰가 쌓이지 않을 수 없다. 군대간 직접접촉이 꺼려지면 북한군과 남한 민간근로자, 남한군과 북한 민간근로자가 같이 사업을 진행하면 어떤가.

신뢰란 서로 보고 듣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생긴다. 그래서 영어에서도 무조건 믿는 믿음(trust)를 쓰지 않고, 확인하면서 믿는 신뢰(confidence)라는 용어를 쓴다.

미국과 소련간의 중거리핵무기 폐기협상에서도 확인 검증을 반대하는 소련에 대해 미국은 소련의 속담에서 '믿어라 그러나 확인하라' 는 말을 찾아 검증의 필요성을 설득해 통과시켰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 말에도 '백문이 불여일견' 이라는 말이 있다. 남북이 같은 사업에 동참하면서 경제발전을 위해 군대를 활용하고 작으나마 군사력을 제거하고 후방배치하게 된다면 신뢰가 쌓일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신뢰구축만으로 군사적 상호불신과 실제 위협을 제거할 수 있는가? 6.15 공동선언 이후 신뢰가 시작되고 있지만, 북한은 왜 7월에 기동훈련을 했고 남한은 8월에 한.미연합훈련을 축소했는가.

지뢰제거가 시작되려고 하는데, 지뢰발사기를 대량구입함은 무슨 이유인가. 이런 현상은 아직도 남북한의 군사대결 현실과 군대체제, 전략이 변하지 않고 있음을 방증한다.

유럽에서도 신뢰구축은 정확한 정보에 근거한 사전 계산된 전쟁은 막을 수 없다고 입증되었다. 한반도에서 상호 군사위협을 확실히 제거하기 위해서는 신뢰구축과 함께 군사제한 조치와 군축조치도 병행해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멀리 보려면 한층 더 올라가 멀리 보아야 한다(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 남북 국방장관 회담이 지속돼 장기적.종합적인 한반도 군비통제 조치가 합의.실천되기를 바란다.

한용섭 <미 랜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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