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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적십자회담 결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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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결렬 위기까지 갔던 금강산 2차 적십자회담이 막판에 극적인 합의를 이뤄냈다.박기륜(朴基崙)수석대표 등 남측 대표단은 23일 저녁 북측에 '회담 결렬' 을 선언하고 회담장 철수방침을 통보했다.그러자 북측이 '그럴 순 없다' 며 재차 협상을 요청, 마지막 절충이 시작됐다.

그 결과 이산가족 생사확인.서신교환 등의 절충은 이뤄냈으나 면회소 설치, 국군포로.납북자 문제 등은 성과를 내지 못해 '반쪽 합의' 에 만족해야 했다.

◇ 가닥잡은 이산가족 생사확인〓남측 朴수석대표는 23일 최승철 북측 단장과의 세차례 접촉에서 "남측의 상봉신청자(9만5천여명) 명단 전부를 교환하되 생사여부는 시한없이 1만명 단위로 끊어서 확인하고 통보는 수시로 하자" 는 수정안을 내놓았었다.

연내 생사확인 마무리라는 최초 입장에서 한 걸음 양보한 안(案)이었다."북측 입장을 고려, 시기.규모의 융통성을 둔 것" 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북측은 "9월 중 시범적으로 1백명 생사확인 실시 후 단계적 확대" 라는 안을 고수, 남측 대표단이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결국 양측은 막판 접촉을 통해 "9, 10월에 시범적으로 1백명씩 이산가족 생사확인 명단을 교환하고 이후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는 '단계적 접근' 의 합의를 이뤘다.

9만5천명에 대한 '연내 생사확인 마무리' 라는 남측의 당초 목표가 무산됐고 시범실시의 규모도 2백명에 그쳐 '조금씩, 천천히' 라는 북측 입장이 반영된 모양새였다.

서신교환에 대해서도 양측은 '생사확인된 이산가족부터 9월 중 실시' (남측), '10월 중 1백명 서신교환 시범실시' (북측)로 평행선을 달렸다.

그러나 막판에 11월 중 생사확인된 남북 3백명씩 대상의 서신교환 후 단계적 규모 확대로 결론이 났다.

남측 관계자는 "일단 남북간에 서신교환의 물꼬를 튼 의미가 있다" 며 "12월 3차회담에서 규모를 대폭 늘려나갈 것" 이라고 기대했다.

◇ 북측 왜 소극적이었나〓북측은 회담기간 중 "남측이 컴퓨터 1천대만 주면 생사확인이 쉬울 것" 이라고 하는 등 '준비.능력부족' 을 거듭 내세웠었다.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은 이에 대해 "너무 숨가쁘게 나가 북측도 좀 조정한다는 얘기가 있고 대남사업 종사자의 한계도 있다" 며 "10, 11, 12월 일정이 가득차 있다" 고 설명했다.

8.15 상봉당시 남측이 2백명의 상봉대상자 중 1백98명의 생사를 확인한 반면 북측은 한달 동안 1백38명만을 확인했었다.

98년 2월에 설치한 인민보안성(경찰)내 '이산가족 주소안내소' 의 전산망 역량이 미미하다는 증거로도 해석됐었다.

북측은 더욱이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55주년 기념일에 즈음한 제7차 노동당대회의 가능성이 있어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점도 거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서신교환 등의 급진전으로 '남측소식' 이 북측 곳곳에 전파될 경우 체제 불안요인의 가능성을 우려한 북측의 '시간끌기 전술' 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북측은 남측이 제안했던 이산가족 동숙(同宿)상봉에도 난색을 표명, 북측 주민들의 생활현장에는 두터운 벽을 쳤다.

◇ 연내설치 어려울 면회소〓 '생사확인.서신교환' 에 브레이크가 걸려 정작 최대 과제였던 '면회소 설치' 는 제자리 걸음. 남측은 연내 판문점.금강산 병행설치를 주장했으나 북측은 "올해는 생사확인.서신교환, 추가상봉이 이뤄지니 내년 봄에 설치하자" 고 버텨 성과가 없었다.

더구나 3차 회담이 12월 중순으로 합의돼 '연내 면회소 설치' 의 목표는 차질을 빚게 됐다.특히 면회소 설치와 비전향 장기수 송환이 맞교환됐던 점에서 북측이 계속 시간을 끌 경우 '약속위반' 문제도 제기될 조짐이다.

남측은 광의의 이산가족 범주로 해결하겠다던 국군포로.납북자 문제의 실마리도 풀지 못해 미완의 과제로 남게 됐다.

최훈 기자, 금강산〓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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