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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서 띄운 경협 편지] 정주권 엘칸토 이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5면

평양 만경대 구두공장은 엘칸토가 1994년부터 3년여 동안 북한과 줄다리기를 한 끝에 결실을 본 곳이다. 지난해 서해교전이 벌어졌을 때도 나는 평양에 있었다.

교전 소식에 남한 가족들은 가슴을 졸였다지만 나는 공장에서 설비를 갖추느라 눈코뜰새 없었다.

공장설립 당시 1백50명이었던 북한 근로자는 지금 4백명으로 늘었고 연말이면 5백명이 된다.

이 공장에서 구두 외에 핸드백.지갑.벨트 등도 만들기로 했기 때문이다. 몇년 안에 구두 협력업체들이 북한에 들어오면 구두 원.부자재와 완제품을 한꺼번에 만드는 종합 구두생산 타운을 세우겠다.

며칠 전부턴 3차원 동영상을 통해 구두를 임가공하는 기법을 활용하고 있는데 북한 전산기술자 3명이 함께 일하고 있다.

처음에는 서먹했는데 최근 남북화해 분위기를 타고 우리 기술진과 북한 근로자들은 형제처럼 일한다.

북한 노래방에서 어깨동무하고 노래를 부를 땐 한민족이란 뜨거운 정을 새록새록 느낀다.

정운업 민족경제협력연합회장에게 최근 북한공장에서 만든 새 구두를 보여주자 "그것 봐라. 조선민족이 한데 뭉치면 못할 일이 없다. 말이 통하고 얼굴이 같은 민족인데 안될 일이 없다" 고 말했다.

지금 공장 인근 숙소에서 가족이 팩시밀리로 보낸 글을 읽고 있다. 중국 베이징을 거쳐 온 편지인데 가족의 따스한 정이 그대로 묻어 있는 것 같다.

빨리 e-메일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주권 <엘칸토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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